D.Miss, SON Ministries
GMAN/KWMO 대표
의사 알렌부터 하와이 이민, 북미주한인교회 선교 시작
다민족, 다문화권, 이민커뮤니티서 시작된 선교적 교회
들어가는 말
북미주 한인교회 교회사를 통해서 보는 선교동원의 역사를 관찰하고 1903년도에 미국 하와이섬에 최초의 한인교회가 생긴 이후로 한인교회들이 선교에 참여하는 과정과 결과들을 살펴봄으로 북미주 한인교회들의 선교동원에 관한 시대적 특징을 고찰하며 미래선교동원 전략을 제안하기로 한다.
지난 과거의 미주한인교회들의 성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섭리를 이해함으로 앞으로 한인교회들이 세계선교에 어떠한 방향으로 참여하도록 선교동원을 해야 하는지 방향설정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북미주 한인교회 시작의 계기를 만든 조선에 최초로 입국한 의사 알렌선교사
하나님께서는 어려웠던 조선말의 시대에 한인들을 미국 하와이 섬으로 이민을 보내신다. 이 과정은 당시에 조선의 상황에서는 이민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성경이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하고 떠나는 과정과 흡사하다. 또한 하와이의 이민은 사도행전의 이스라엘 백성이 디아스포라로 떠나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러한 이민의 과정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선교동원의 치밀하심을 선교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다.
한국이 아직 창의적 접근 지역으로 남아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알렌이라는 의사 선교사를 통해서 서양교회의 한국선교의 문을 여신다. 북미주 한인교회는 북미주에서 파송된 알렌선교사의 의하여 시작이 되었다. 알렌 선교사의 연결로 인하여 한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일꾼으로 보내지게 된다. 하와이는 1898년도에 미국본토에 병합이 된다. 당시 이미 사탕수수 농장이 5개가 있었던 하와이는 1897년 6월 16일 매킨리 미국 대통령과 하와이 공화국이 합병조약을 체결하도록 하였고, 이 조약을 미국 의회가 1898년 7월 7일에 비준하였다. 조약이 효력을 발생한 날짜가 1900년 4월 30일이였다(자료출처: https://ko.wikipedia.org).
하와이의 미국 병합으로 하와이에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미국 본토로 이주하는 일로 급히 노동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하여 조선인들의 노동이민의 계기가 열린다. 선교동원의 관점에서 볼 때 조선의 역사와 북미주 한인교회의 시초에 대한 역사를 재조명하면 하나님의 선교동원전략은 하와이의 1898년도의 미국합병 14년 전에 조선에 알렌을 보내시고 14년간 성공적으로 선교의 기반을 만들에 하시고 조선인들이 하와이에 오게 함으로 한국교회의 세계화를 미리 준비하심을 알 수 있다. 선교의 역사에서 볼 때 하나님은 일반역사를 통해서도 선교를 확장하시는데 당시 갑신정변으로 민영익과 알렌의사를 만나게 함으로 사실상 국선교의 문이 열리는 결과가 생기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알렌은 1890년부터 주한 미국공사가 되었다. 1901년도에 휴가차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와이 사탕수수 경작자협의회의 한사람을 만남으로 하와이 노동문제와 조선인 이민 계획을 맡게 된다. 이 일로 인하여 조선인들의 이민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하와이 이민역사(1902년 12월 2일-1905년 11월)
만 3년간만 조선인들의 하와이 이민의 기간이 열린다. 이 기간에 1902년 12월 2일부터 1905년 11월까지 총 33척의 선박으로 6,747명의 조선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한다. 이때에 인천내리감리교에서 선교를 하던 감리교 목사 존스(George H. Jones)가 사탕수수재배협회에서 1902년 5월 한국인 노동자를 모집하려고 파견된 존 대쉴러와 연결하여 본격적으로 내리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사탕수수 밭 노동이민자를 모집을 돕는다. 존 대쉴러는 주한 미국공사였던 알렌에게 '지금 하와이로 이민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선의 조정을 설득하도록 건의를 했다. 이 뜻을 받아들인 고종은 이민사업과 신문화 교류사업을 위한 명분으로 1902년 8월 20일 수민원을 설립하고 민영환을 수민원 총재에 임명한다. 이때부터 서울, 인천, 부산, 원산 등지에 개발회사가 설립되고 이민자를 모집했다.
당시 인천 내리교회의 조지 하버존스 목사(한국이름 조원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존스목사는 내리교회의 한국인 신도들을 통해서 그들의 친지나 이웃사람에게 하와이 이민을 설명했으며 서울 등지를 직접 다니면서 교인들의 응모를 권유하기도 했다(www.urimcrc.com). 첫 출발한 이민자들이 미국상선 켈릭호로 1903년 1월 3일에 호놀룰루 항구에 86명이 상륙을 했는데 남자가 48명, 여자가 15명, 어린이가 22명이였다. 그들은 와알루아의 모클레아 농장으로 갔다. 2차 이민자들 63명은 캅틱호로 1903년 3월 3일 호놀룰루에 도착하여 오아후섬 카후크 농장으로 갔다.
1903년도에 이민은 16차로 모두 1,133명, 1904년도에는 33회에 3,434명, 1905년도에는 6월까지 16회에 2,659명이 도착했다. 총이민자수는 남자가 5,048명, 여자가 637명, 어린이가 541명이였다. 당시 이민자들의 구성을 보면 65% 정도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는 교인들, 공부를 목적으로 한 학생들, 향리의 선비들, 광부와 군인들 그리고 농촌이 머슴들 역부와 건달들이 혼합되어 있었다. 이들은 모두 각 섬에 있는 40여개이 농장으로 분산되었다. 한곳에 30여명에서 많게는 300여명까지 집단거주를 하며 노동을 하였다. 새벽 5시반부터 일을 하여 오후 4시까지 일을 하고 하루 일당이 남자 67센트, 여자 50센트였다
북미주 한인교회의 첫 교회-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
첫 이민자들 중 50여명이 인천내리감리교회 교인들이었다. 첫 한인교회에 선교적인 특징이 있는데 첫 이민자 중에 인천내리감리교회에서 이민자들의 신앙지도를 목적으로 파송한 홍승하 전도사가 동행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사탕수수 노동이민자 그룹에 처음부터 선교를 목적으로 내리교회에서 홍승하 전도사를 함께 보냈다는 것은 북미주한인교회에 시작이 선교사로 인하여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하나님이 선교동원의 한 부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알렌을 통하여 한국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시고 하와이 이민의 결과로 이어지며 인천내리감리교회 가 처음으로 선교에 동원이 되는 형태가 되었다. 홍승하 전도사를 교인들을 위해 파송하게 된 것이다.
1903년 11월 3일에 안수정, 유병길을 대표로 하여 당시 하와이 감리교 감리사였던 피어슨(George L. Pearson)목사와 연결하여 리버스트리트 집을 얻고 11월 10일 홍승하 전도사의 인도로 첫 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 첫 예배가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가 되었다. 당시 홍승하전도사는 약관의 34세였다. 1869년에 경기도 영흥출생으로 26세에 예수를 영접하고 감리회 신학회에 공부를 하고 1902년 5월 1일에 수료를 하고 1903년 8월에 하와이에 이민자들을 전도할 목적으로 하와이에 파송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의 교회들이 설립되는 기록을 박기호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고 있다. “1910년 당시에는 각 섬마다 교회들이 설립되어 한인교회수가 35개에 달하였고 한국인 권사가 27명 그리고 지방교회 교인수를 합하면 1,000명이 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20년대에 들어서는 미국 본토에 유학온 한인 학생들이 증가하며 교회들이 세워져갔다.
2018년도 현재 북미주한인교회 현황과 선교동원의 연관성
북미주한인교회의 현황은 2018년도 초 미주크리스찬투데이 신문의 집계에 따르면 2018년 1월 13일을 기점으로 미주내 한인교회는 4,454개로 1년 전에 비해 33개가 증가한 수로 집계가 된 것을 발표하였다. 또한 2018년 5월 1일 미연방 센서스국이 발표한 전국 인구현황 평균 추계(American Community Survey)에 따르면 미국전체 한인 인구는 170만 정도이고 이를 4,454개의 한인교회와 대비해 보면 한인인구 약 382명당 한인교회 1개꼴이었다.
북미주 한인 교회들은 안정기에 들어가고 있다. 선교적인 환경에서 볼 때 한인교회들은 세계선교의 가능성이 많은 한인교회들이다. 아직은 한인교회 출신 선교사를 파송한 실제조사를 한 통계가 없다. 이런 현상은 아직 선교동원에 대한 전체를 연결하는 선교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북미주한인교회는 다민족, 다문화권, 한인이민커뮤니티에서 시작되어 출발부터 자연스럽게 선교를 배우고 성장하는 선교적 교회이다.
한인교회들의 선교동원을 위한 선교동원력 증대
한인교회 초기의 성장과정의 관찰결과 선교동원에 있어서 북미주한인교회들의 역사 속에 나타난 현상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한인커뮤니티의 성장에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였다. 한인사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미국 사회에서의 안정과 성장을 이끌어내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인교회들이 저력을 가지게 되도록 도와주는 결과가 되었다. 이것이 한인교회들이 세계선교를 감당할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만들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둘째로 한인교회들이 성장하게 되는 과정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음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이 한국에서 선교사들을 내보내시고 그들에게 선교동원력을 키우신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이 지고 있는 선교지 경험은 곧 선교동원력을 전환이 되었으며 그 선교 동원력이 북미주 한인교회들을 선교로 깨우며 세계선교에 참여하도록 기초를 만들었다.
선교의 성장은 선교동원력과 직결됨을 살펴볼 수 있다. 선교동원력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고난과 연단을 통하여 내부적으로 저력이 생기고 지도자들이 나오고 인프라가 생기며 네트웍이 형성된 후 외부의 선교동원력을 가진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선교동원이 진행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성경적인 원칙이기도 함을 관찰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한인교회들은 자연스럽게 선교동원력이 커지고 있다.
북미주한인교회들의 선교동원을 위한 전략제안
첫째, 소중한 교회운동을 제안한다.
소중한교회운동의 뜻은 소형교회와 중형교회의 선교운동을 줄인 말이다. 미주크리스찬투데이의 조사를 인용한 한국일보 보도(2018.5.10)에 의하면 한인교회들의 76%는 100명 이하 성도이고 이중에 47.1%는 50명 이하교회들로 나타났다. 따라서 소형 중형교회들은 재정이나 인력동원, 파송에 단독으로 선교를 진행하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소그룹으로 5-10개의 교회들이 선교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선교사를 공동으로 파송하여 함께 선교사역을 수행하도록 한다.
둘째, 은퇴한 전문인들을 동원하기 위한 황금기선교사 운동을 제안한다.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현재 한인교회들의 성도구성비가 점차로 은퇴한 연령의 성도수가 교회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인교회들의 선교자산 중 하나가 전문직을 가지고 평생 살아온 은퇴연령의 성도들이다.
미국에서 은퇴를 하면 기본적으로 사회보장연금이 나온다.
이 연금으로 해외 선교지에 나가서 본인의 전문성과 지식을 가지고 필요한 선교사역을 할 수 있다.
선교지에 가도 미국정부에서 은퇴연금은 나오기에 충분히 선교비 모금을 하지 않아도 본인생활을 할 수 있다. 선교지에서의 본인 생활비는 은퇴연금으로 충분히 현지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역비는 소중한 교회공동체가 작은 액수라도 공동으로 모아서 보내면 선교사역비도 충당이 될 수 있다.
황금기선교사들은 1년에 선교지에 3개월씩 3번을 나가고 1개월씩 3번을 미국에 들어와 휴식하며 건강체크와 가족들과 만나고 또한 교회들을 방문하여 선교사역을 나눌 수 있다. 65세 은퇴 후 최소한 3년간 황금기선교사로 헌신하도록 한다. 황혼기가 아닌 황금기선교사동원이다.
셋째, 선교인력동원을 위한 선교박람회 활성화를 제안한다.
현재 북미주에는 선교동원을 전문으로 하는 선교운동이 없다. 따라서 선교 인력동원만을 중점으로 하는 선교동원 운동으로 선교박람회를 통해서 선교지에 필요한 인력동원에 초점을 맞춘 선교대회를 하도록 한다.
이 선교박람회는 선교지에서 필요한 인력을 모집하기 위한 대회로 선교사들이 미주 전 지역으로 흩어지고 찾아가는 선교대회 형식으로 진행한다. 일반성도들이 자신들의 은사와 재능 그리고 전문성으로 가지고 자신이 필요한 선교지에 연결되어 선교사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현재 SON Ministries/GMAN은 매년 선교박람회를 개최하여 소중한 교회와 황금기선교사동원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려고 한다. 올해 11월 5-7일에는 31개국의 124명의 선교사들과 오렌지카운티 중심의 50개 한인교회들이 함께 선교박람회를 개최하여 좋은 성과들이 있었다.
나가는 말
현재 북미주한인교회들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초기 이민 개척시대의 교회에서 중반기의 이민사회 정착과 안정기 그리고 약 4,500교회가 넘는 시대를 맞이하여 선교동원의 방향이 다시 제시되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1988년도에 시카고 휘튼대학에서 개최된 KWMC 운동이 지난 32년간 지속되어왔고 또한 2001년도에 시작된 KIMNET 운동도 있지만 이제는 전체 한인교회들 중 76%가 되는 소형, 중형 교회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선교사를 파송하고 협력하여 선교참여와 동원을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북미주 한인교회들안에 있는 건강한 은퇴한 전문인 성도들이 평신도전문인으로서 황금기선교사의 신분으로 선교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이런 운동이 북미주 전 지역에 확산이 되도록 선교박람회운동을 통해 흩어지고 찾아가는 선교동원시대를 열어야 한다.
북미주 한인교회들은 선교잠재력이 매우 큰 교회들이고 세계선교의 자원이다. 또한 본국의 한국교회들과 동반자의 관계로 현장에 나가서 선교를 하고 있는 선교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선교지의 인력을 동원하는데 우선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동안 북미주에 오는 한국인 선교사들은 선교인력동원보다는 선교재정동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이제는 선교인력동원에 중점으로 두고 선교인력을 동원하면 북미주한인교회가 가지고 있는 선교잠재력을 극대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