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위기에 선 교회와 성도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적,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격에 즈음하여 -
박시경 교수

그레이스신학대학교

“가히 치명적이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 앞에 잔인하게 전개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다가 이제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다. 바로 COVID-19(코로나 바이러스 19)으로 명명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세계적 전염병 현상이다. 전쟁도 이런 참혹한 전쟁이 없다.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대상으로 하는 전쟁 말이다.

그리스도의 지상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예배의 형태가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면서 성도들의 뇌리 속에 전통적인 예배에 대한 개념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이런 예배 형태의 변화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시간을 두고 연구해봐야 할 과제이다. 그리고 이 재앙이 한국 교회의 선교를 어떤 형태로 변화시킬지도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가상공간에서의 온라인 예배만 해도 한국의 대도시의 대형교회 중심으로는 잘 준비된 예배가 가능하다. 그러나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중소도시, 농어촌 소규모 교회에서는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교회도 노령화 된 성도들도 와이파이를 기반으로 한 가상공간을 현실화 하는 것과 테크놀로지의 활용이 난해하기만 하다.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인구가 밀집되고 보건시설이 열악한 선교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기조차 벅차다.

멀리까지 갈 것 없이 현재 미국의 상황은 더 절박하다. 2020년 4월 17일 현재 89만명의 확진자와 50,363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데, 이 통계를 나타내는 그래프의 상승곡선은 최근 들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남북전쟁 이후 한 번도 전 국토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미국 땅에서 전대미문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에 대해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대전 전후로 모든 것이 변화되었듯이, 코로나바이러스 전염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확연히 구별될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기존의 세계화를 기반으로 한 자유시장 경제가 상당한 규모로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즉, 국경을 넘나드는 인적, 물적 교류가 심각하게 축소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해외여행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세계화에 앞장섰던 나라들이 국가 간 협력과 이해증진보다는 자국의 이익에 우선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 이기주의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시점에서 존 파이퍼(John Pipper)목사의 신간 “코로나바이러스와 그리스도”(Coronavirus and Christ)는 우리가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는 이 1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얇은 책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주장하고 있다.

1. 현재 우리사회의 도덕의 붕괴 2.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숙고 3. 그리스도와의 관계성 회복에 대한 심각한 재고 4. 위기에 대처하는 교회의 선행 실천 5. 고난을 복음 전하는 계기로 삼음. 여기서 그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가 당한 고난(행 8:1-6)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 사도행전 8장1-6절은 그 고난을 몇 문장으로 요약해서 기록하고 있지만, 기독교 역사는 이 고난과 박해를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대 재앙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고난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통치자와 유대교의 지도자들로 부터 온 것이었다. 재산과 가족과 시민권을 잃은 초대교회 기독교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유세비우스(Eusebius Pamphili)라는 유대인 출신 교회역사가이다. 그가 서기 314년에 가이사랴교회의 감독으로 임명된 것을 보면, 로마황제 콘스탄틴이 서기 313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해와 거의 겹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역병이 걷잡을 수 없이 만연할 때, 그리스도 교회의 공동체가 보여준 모습을 그는 놓치지 않고 그의 저서 Historia에 기록하고 있다. 서기 236년,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현재 아프리카 튀니지아)를 강타한 전염병에 초대 기독교 교인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당시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와 알렉산드리아는 기독교 교세가 유럽대륙 못지않게 우세한 지역이었다.

유세비우스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은 넘치는 사랑으로 형제와 같은 친절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굳게 붙잡고 격려하며, 병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찾아다녔으며,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지속적으로 사역하였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전염병에 걸린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감수하고, 전염병에 걸린 이웃을 도우면서 기꺼이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죽었다, 환자들을 돌보며 많은 사람들을 격려했던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항상 예의의 표현으로만 사용하던 말들을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을 위한 폐기물로 여기며 실제로 행동하였다.” 

어떤 신학, 어떤 논리, 어떤 설교보다 더 설득력 있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복음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서기 313년에 콘스탄틴 황제가 괜히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한 것이 아니었음을 위의 글은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전염병에 걸린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죽었다.” 당시 초대 기독교인들의 이 무지막지한 사랑의 헌신은 현재 우리로서는 감당이 안될 뿐 아니라 상상하기조차 힘든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집 안에서만 칩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기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절실하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 고통당하는 이웃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미생물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우리의 사랑의 헌신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stephanos08@gmail.com

05.0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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