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맞으며

이수영 목사

뉴욕 등대교회

J 목사님, 목사님의 교회 행사에 초대받아 다녀 온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데, 그 곱던 단풍은 다 어디로 가고, 앙상해진 나뭇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이 이제는 우리가 한 겨울에 살고 있음을 알립니다. 교회의 일할 사람을 세우는 임직식을 겸해 열린 창립기념주일치고는 좀 특별하기는 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다녔던 교회의 추억을 되살리게 했던 언덕위의 아름다운 예배당, 푸른 눈의 목사님들이 교단과 교회를 대표하여 전하던 따스한 축하메시지, ‘진정한 의미에서 성장하는 교회란’ 그 교회 구성원들에게 거듭난 체험이 반드시 있느냐? 가 무엇보다 중요하더라고 힘주어 설교하시던 설교자의 묵중한 메시지, 그리고 여성 목사님 특유의 섬세함으로 잘 준비된 식탁 등등....

마약 중독으로 홈리스가 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여 치료한 후, 재활을 돕고 본업인 플러밍 기술자로 제 삶을 찾게 하였던 일, 뇌수가 코로 새어나와 목숨을 곧 잃을 위기에 처한 중국동포를 성경공부와 기도로 믿음을 가지게 하고,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게 하여 건강힌 삶을 회복하게 하였던 일 등은 교회설립 20주년의 세월이 그냥 채워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목사님의 기도가 뜬구름 잡기가 아닌, 작은 씨앗 속에 숨겨진 하늘나라의 비밀을 밝히어 온..., 한뜸 한뜸 옷을 깁는 것과 같은 목회예술이었음을 증명합니다. 그 날 입었던 목사님들의 아름답던 스톨의 문양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목사님, 그렇게 아름답고 따스하게 진행되었던 예배와 기념식, 그리고 잘 살아 보겠다고 미국 땅에 이민 와서, 오히려 날아가 버린 꿈과 어긋났던 사람들의 삶을, 신앙을 통해 회복 시켜주고 희망의 심지를 다시 돋우어 주었던 이야기들보다, 제게 있어 정말로 그 행사가 특별하게 보이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목회의 안정적이고 빛나는 시기들이었던 것이 아니고, 교회역사 20년의 기간 중에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였음을 저는 주목합니다.

목사님이 전에 사용하던 예배장소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나서 얼마 후 나오던 교인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나중에는 목사님 혼자 남게 된 적이 있었다면서요? 그리고 그렇게 혼자남아 3년을 미국교회에 출석하며 그냥 빈 교회당을 지켰다면서요?

저는 그 시기의 쓸쓸했음에 주목합니다. 그 시기의 외로웠던 추억, 그 시기의 낮아진 자존감에 주목합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장장 3년을 가파른 언덕 위의 예배당을 오르내리면서 목사님이 느꼈을 고민과 갈등들에 주목합니다.

그 시기동안 벌어졌을 내적 싸움은 때로 하나님의 외면조차 느끼게 했을 것이고, 조금 앞서 가자면 마더 테레사의 영적인 어둠의 시기와 같을 수 있었겠다는... 때로는 없는 것처럼 존재함으로 완벽히 실재하시는 하나님으로 하여 느꼈을 하나님의 부재감은, 우리 신앙인이 건너기 힘든 가장 큰 시험의 강이기도 하고요. 보통은 세상도 그렇습니다. 내가 씽씽 잘 나갈 때는 연락들도 잘 하는데... 왠지 발길도 뜸해지고... 웬만한 사람들의 경우였다면 그 기간이 6개월 만이래도 벌써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3년을 버텨냈습니다. 살아간 것이 아니고 살아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시기를 이겨낸 기도, 그 시기의 견딤이 없었다면 20주년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강함을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니 그런 오래 참음의 가르침을 실천해낸 목사님의 순종에 박수를 보냅니다. 비록 지금도 어디에 자랑할 만큼 교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다져짐 위에 서있는 교회이기에 이제는 어떤 풍랑이 온다 해도, 와도 잘 이겨내며 앞으로 전진하는 교회가 되어갈 것으로 믿습니다. 힘 있게 찬양하는 청년 찬양 팀을 통해 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크다는 것 때문에 세상에 위로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근심을 끼치는 교회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요즈음이지만 목사님의 교회는 여전히 이민사회에 빛을 비추어주는 안식처로 존재할 것입니다. 목사님, 다시 한번 20주년을 축하합니다. 건강하십시오.

sy1136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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