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천고마비

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유난히도 덥고 뜨거웠던 여름의 뒤끝까지도 무덥다.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하나 한낮엔 뜨거워져 심한 기온 차로 건강도 옷차림도 종잡기가 쉽지 않다. 인간이 자초한 이상기온이 지구촌을 엄습한 결과라고 한다. 문제는 이런 불순함이 앞으로 더 가중될 것이라는 점이다. 더워서 혀를 내미는 헐떡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난히 추울 것이라는 예측이 소름을 돋게 만드는 아이러니도 나타난다. 

한국은 사계절이 분명한 날씨를 자랑해 왔다. 봄 춘, 여름 하, 가을 추, 겨울 동으로 표현되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은 듣기만 해도 살기 좋은 곳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사계절 중 두 개가 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봄과 가을이다. 

봄은 만물이 소성하는 계절이다. 봄이 없어진다면 인동초(忍冬草)라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봄이 없다면 새싹은 언제 돋고 꽃은 언제 피며 벌과 나비는 어디로 갈까? 이는 단순히 생태계의 혼란으로만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현상은 인간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 생태계의 변화는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란다.

내가 버린 오물이 나의 입으로 들어가고 내가 태운 연기가 나의 폐로 들어간다는 것은 자업자득이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은 정한 이치다. 나의 언행도 이 하늘의 이치 혹은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심은 대로 거두기도 한다. 예화다. 뻐꾸기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옆 가지에 앉아 있던 비둘기가 물었습니다. “왜 그리 슬피 우십니까? 배가 고프신가요?” 뻐꾸기가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습니다. “내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답니다. 자녀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노년이 너무 쓸쓸합니다.” 비둘기가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이 언제 아기를 낳으셨습니까? 둥지에 알을 품고 오랫동안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뻐꾸기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화창한 날에 컴컴한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래서 알들을 모두 다른 새 집에 넣어 놓고 이 산 저 산 다니며 노래를 불렀답니다.” 비둘기가 말했다. “참 욕심이 많으십니다. 심은 것도 없이 무엇을 바라십니까?” 

하나님이 물으신다.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눅 19:22) 인과는 분명하다. 심었으니 거둘 수 있고 버렸으니 내가 취해야 한다. 좋은 것은 나의 것이고 나쁜 것은 너의 것이라는 이기(利己)는 도리가 아니다.

이상기온의 엄습에 대해 어떤 사람도 어떤 나라도 다 자업자득임을 받아들인다. 우주에서 떨어진 오물이 지구를 오염시켰다고 말하지 않는다. 네 탓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너무도 심각해진 후에야 내 탓임을 자각하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환경을 말하고 배출가스 규제를 논의하고 있다. 최소한 이 선에서라도 지켜보자는 안간힘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도 사라질지 모른다. 문자적으로는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는 의미지만 이는 더 나아가 사람 살기가 아주 좋은 계절이라는 의미가 더 깊다. 그런데 이 좋은 계절마저 빼앗길 위기라고 한다. 봄과 가을이 없어지면 여름에 심어 여름에 거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철 음식도 사라질지 모른다. 따라서 건강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 

텃밭에 철을 따라 몇 가지 채소를 심어 먹었었다. 이것이 올해는 많이 달라졌다. 심기는 심는데 거둘 것이 적어졌다. 벌레들의 기승도 더 심해지고 있다. 웬만한 농약으로는 벌레가 죽지 않고 채소의 싹을 싹둑 잘라 기대가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다. 특히 김장배추의 피해가 적지 않은 듯하다. 두세 번을 거푸 심어도 제 꼴로 남아나질 못한다. 나야 초보농부(?)니 그렇다 쳐도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이들의 배추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상기온으로 뿌리가 썩고 그나마 남은 것들은 벌레들이 갉아먹어 벌써부터 김장 걱정들을 하고 있다.

지금도 아프리카 등에서는 굶주림이 심화되고 있는데 작은 농사들이야 그렇다 쳐도 큰 농사들이 타격을 받으면 이는 지구촌 전체의 기아로 번질 수 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 가지이니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8)는 것이 창조의 섭리이기에 춘하추동도 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춘하추동이 제 기능을 다하면 천고마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연이, 생태계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작은 손짓에서부터 가능할 수 있다. 휴지 한 장을 아껴 쓰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어렵지 않다. 문제는 습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직까지는 살만하다. 여기저기 작은 후유증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제라도 잘 관리하면 더는 나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만한 세상, 우리가 살고 후대에게 이만한 세상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책임이 지금 숨을 쉬고 사는 현대인에게 있다. 지금의 너와 나에게 있다. 천고마비를 더 보고 싶다!

hanmackim@hanmail.net    

 

10.1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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