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불감증

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이 세상에 믿을 것이 있을까? 결론은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다’일 것이다. 그럼에도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은 왜 생겼을까? 안전 불감증은 설마가 원인일 수 있다. 설마하니 그가…, 설마하니 내게… 등의 믿음이 아닌 막연한 행운 바람이 원인일 수 있다. 

맡겨도 좋을 만한 또는 맡김 직한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만한 것이 없기에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남편 혹은 아내니까, 부모자식이니까, 형제니까, 믿을 수 있고 믿어도 괜찮을 만하다면 세상은 좀 풋풋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도 전혀 아니다.

오늘 뉴스에 S서비스센터에 휴대폰 수리를 맡겼는데 아주 예민할 수 있는 사진을 두어 시간이 넘게 뒤져봤다는 그래서 뒤탈이 생길까 봐 불면에 시달린다는 그러니 믿을 게 어디 있냐는 내용이 소개되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말은 이제 시대에 한참이나 뒤쳐진 속담이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나보다. 도무지 믿을 만한 것이 없으니 말이다.

공자의 심장을 닮은 말도 있다. 그래도 믿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믿을 게 하나도 없는 세상에 살기는 해도 그래도 믿고 싶다는 소원마저 삭제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없다고 해도 그래도 어딘가에는 있으려니 하는 희망마저 놓아버릴 수는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전 불감증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안보일 것이다. 6‧25가 발발하고 3년 뒤 휴전이 되어 7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남과 북은 긴박한 대치 상태를 위태위태하게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뎌진 것일까? 외국에서 보면 대한민국에 곧 전쟁이 터져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일 정도라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무사태평이다. 외국에 사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전쟁이 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하면 한국에서는 1%의 불안감도 없이 대꾸한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전쟁위협은 이 세상에서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는 말세라는 말과 대등할 정도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 사건을 통해 세상을 멸하실 때 그 당시의 세상은 온갖 죄악이 만연하여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소개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5-7). 그렇다면 오늘의 이 세상 아니, 사람은 그때보다 어떠할까? 아직은 죄악이 덜 찬 것일까? 죄악으로 가득한 상태를 관영(貫盈)함으로 표현한다. 죄악으로 꽉 차 있는 상태 즉 컵에 물이 가득 차서 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그만큼이 흘러넘치고 아주 작은 바늘 한 개조차 더는 찔러 넣을 수 없는 상태 관영이라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라는 시각이 바로 죄악으로 관영한 상태라고 한다. 그럼에도 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멸하시지 않는 것일까? 홍수로 세상을 멸하실 때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래서 그와 그의 가족 등 여덟 명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이 세상에는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일까? 아마도 아닐 것만 같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악이 덜 차서가 아니라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어 되찾으시려 한 영혼들이 아직도 세상에 남아 있기 때문일 듯하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심으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사42:1-3). 하나님이 택하신 자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해 세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정의를 시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아직은 진노를 발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세라는 말이 수천 년을 이어온다고 하여 휴전상태의 위태위태한 상황이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 왔다고 하여 사람들이 안전 불감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에벤에셀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함으로 인해 안전을 보장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이 세상에는 믿을 것이 하나도 없으되 오직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그분의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신 32:4)라는 것이 성경이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이시다. 

안전 불감증을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 오늘도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자들을 기다리고 계심을 믿고 그분 앞에 나아가는 올곧음으로 안전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신앙의 토대에서 안전 불감증을 누렸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믿을 이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심을 믿고 그 온전한 신앙으로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의 전사들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독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믿을 것이 전혀 없는 세상에서의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안에서의 안전 불감증은 격도 질도 다르다. 이것이 믿음의 유익이다.

hanmackim@hanmail.net    

06.1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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