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원연구소 대표)
한국은 총선이라는 선거철에 접어들었다. 선거에 출마할 선수들을 뽑느라 연일 설왕설래가 요란하고 삐걱대는 소리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내가 왜 선수자격이 없느냐며 줄을 이탈하는 풍경도 적잖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했다며 언론플레이를 벌이기도 한다.
의대생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사들의 대치도 점입가경이다. 그동안은 정부와 의료계의 대결에서 9전9패를 정부가 당했다는 기사도 나오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만만치가 않다. 의사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더는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여론도 팽배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쓰임의 여부다.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쓰여지느냐 또는 쓰여졌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후에 토사구팽이나 밥그릇 싸움을 따져보면 옳고 그름이 명확해질 것이다.
성경에는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있다. 허락함을 받은 자의 성향이나 인품, 자격은 나와 있지 않다. 세상에서 많이 회자되는 말 중에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한다’ 거나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는 말이 있다. 둘 다 긴 시간 혹은 긴 세월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필요에 따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아니라 한 번 택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거나 끈을 달아서라도 쓰겠다는 안으로 굽음이 중요하다. 세상에서는 이를 의리라고도 한다.
의리(義理)하면 당연히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나라를 택하실 때 언제나 그 주체는 하나님이셨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이나, 모세를 불러 사용하신 것이나 이스라엘을 택해 자기 백성을 삼으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었다. 택해달라거나 불러달라는 요청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택하시거나 부르신 것이다.
이때 그 주체가 세상적이라면 달 때는 삼키고 쓸 때는 뱉어도 무방하다. 이의를 달거나 일인시위를 벌일 수도 없다. 약속 또는 계약은 깨기 위해 성립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세상인 까닭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할 때 그 서약을 보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처럼 하얗게 희도록 함께 하겠다며 찰떡같이 손가락을 걸지만 갈라서는 쌍이 늘고 있는 것을 보아 그런 서약 또는 약속은 땅(흙덩이)에 새긴 물거품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신 분이다. 일방적으로 약속도 하시고 언약도 맺으시지만 하나님은 한 번 하신 언약을 절대로 어기지 않으신다. 참 신실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내 것이다!’라고 천명(天命)을 하신 후 그들의 상황이나 상태 여부에 관계없이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 책임을 다하셨다. 물론 징계도 하시고 진노도 발하셨다. 말씀을 어기는 자들은 죽이기도 하셨다. 이런 하나님의 무거운 벌은 그들을 끝까지 책임지시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셨다. 죄를 짓고 그 죄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은 결과가 사망이기에 그 사망을 해결하시는 유일한 방법으로 독생자 예수를 그리스도(구원자)가 되게 하여 세상에 보내셨고 그 배은망덕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이시면서까지 책임을 다하셨다.
“나는 성공하는 것보다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 존 맥아더나 “녹이 슬어 버려지기보다 쓰임을 받아 닳아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말한 토저 목사의 신앙을 깊이 음미할 가치가 곧 쓰임이다. 쓰임은 곧 알아줌과 연관이 된다.
지역에서 국회의원으로 쓸모가 있다는 인정을 받았다면 당에서도 공천할 것이고 설사 공천을 받지 못하여 무소속이 된다 해도 그는 당선이 되어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의대증원에 반발하는 의사들 중에 아주 충격적인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는 인사가 있는 듯하다. ‘의사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는 주객이 전도된 말이 나돈다. 의사의 필요는 환자고 환자의 필요는 의사다. 그런데 의사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병이 의사의 허락을 받고 발생하는가? 아무리 세상이 말세로 치닫는다 해도 사람에게는 도(道)가 있다. 가장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사람을 살리겠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였다면 말을 조심해서 하고 그 마음 또한 사람다워야 한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며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하면 안신처처우(安身處處宇)-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니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라는 옛말을 기억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는 쓰기로 택하심을 절대 변이치 않으시나 세상은 자기 한바의 여부에 따라 쓰여지기도 버려지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환자가 없으면 의사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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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