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세계가 다시 어수선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부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혼란해진 세계에 직격탄을 날린 격이다. 무엇이 중한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중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성경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그것들에 대한 관리의 책임을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맡기셨다.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5,26). 그러나 사람에게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는 주지 않으셨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이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의 차별이 없는 평등을 주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사에는 형이 아우를 죽이는 살인사건이 불거졌다. 이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십계명에도 살인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계명(誡命)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반드시 지켜야 되는 조건이 계명인 까닭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살인 즉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무수히 자행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명분에도 살인은 정당화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창조주 하나님이 금하셨기 때문이다.
꺼지지 않은 화약고에서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다시 불이 붙었다. 불과 수일 만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 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늘어나고 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전쟁의 참상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글로벌이라는 용어가 대세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를 넘어 세계화라는 말이다. 진정한 글로벌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념과 사상, 지역과 종교를 다 아우르는 손에 손을 잡는 하나 됨이 필요하다. 나와 너보다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글로벌에 절대 요구되는 동행 정신이다.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우분투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 간의 관계와 헌신을 중시하는 아프리카 전통의 윤리 사상이자 평화운동의 뿌리가 되어 타인과 내가 얽혀 있는다는 유대감, 다른 사람을 돕는 자비심,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관용 정신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되는 말이다. 글로벌을 입에 담는 이라면 그가 누구고 어떤 나라에 속해 있든 이 우분투 사상을 기억하며 이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라도 다 사회적 동물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남자를 창조하신 뒤 그 남자의 독처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 그를 잠들게 하고는 그 갈비뼈 하나를 취해 도울 배필로 여자를 창조하여 남자에게 데려가시자 남자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며 극히 반겼다. 처음부터 혼자로는 살 수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나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와 네가 모여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동행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인처럼 동생 아벨을 죽이는 것은 동행이 아니다. 이 동행에는 참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뿐만아니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39-42)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는 것이 바로 동행이고 누구와도 원수가 되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며 용납할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엔 예수님의 마음이 없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고 말씀하시는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경고가 무섭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적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며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6-9)는 말씀이 이 세상에 던지시는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바로 동행 정신이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상생 정신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우분투의 대의와 상생의 동행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수 있다. 이것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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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