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원연구소 대표)
2023년 세계 잼버리 대회가 전라북도 새만금에서 시작되면서부터 나라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8월 1일 입영한 세계 각국 4만 3천여 명의 대원들이 터뜨린 불만불평과 함께 다수의 위험요인들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대회 첫날부터 온열환자가 속출했고 각종 벌레에 물린 피부병에 화장실과 샤워시설 부족뿐 아니라 바가지 상술까지 총체적인 문제점들이 드러났고 대원들을 한국에 보낸 각국 부모들의 염려와 원성이 언론에 소개되면서부터 전혀 준비되지 못한 부실이 드러난 것이다.
대원들의 신변위협을 느낀 영국과 미국, 싱가폴이 야영장에서 퇴영하는 초유의 상황으로 몰리면서는 대회진행자체가 존폐위기에 몰렸으며 이에 놀란 중앙정부가 전면에 나서면서 가까스로 진정국면으로 전환되었으나 한 번 실추된 신뢰 즉 대한민국의 국격은 치명상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날씨는 연일 35,6도를 웃돌았고 설상가상으로 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로 올라오면서 허허벌판 간척지에서 대피해야만 하는 위기상황으로 치달았다. 태풍 카눈은 결국 울고 싶은 사람의 뺨을 때린 격이 되어 쉽게 개선될 수 없는 새만금에서 대원전원이 철수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정부는 팔을 걷어붙였고 기업과 국민들이 전면에 나섰다. 더 이상 조직위나 전북이 주도하는 대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잼버리가 된 것이다. 새만금이라는 한 자리에 펼쳐진 대회장이 아니라 전국 각지로 대원들은 흩어졌고 프로그램도 대원들을 수용한 지자체의 몫이 되어 축소되거나 변경되었다.
대한민국은 경제규모면에서 세계 12위에 올라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각종 세계대회를 유치하여 성공적으로 치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어린 청소년들 수만 명이 운집할 새만금은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새만금은 간척지다. 비가 내리고 폭염이 내리쬐는 불확실한 날씨를 대비하기에는 환경적으로도 상황적으로도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관계자들의 안일한 의식까지 더해져 원활한 대회를 기대한다는 자체가 요행이었다고 한다.
대통령부터 총리, 자치단체와 다수의 기업, 국민들까지 나서서 사태를 수습했고 퇴영식에 이은 K-POP 콘서트로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그러나 이미 손상된 국격은 회복되지 못했다. 세상인심은 열 번 잘하다가 한 번 잘못하면 그것이 흠이 된다. 병을 주고 약을 줘봤자 본전치기는 어림도 없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다. 그럼에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총기사고는 비일비재하고 거지를 일컫는 홈리스들이 대도시 중심을 차지하여 악취를 풍기는 것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하와이 섬에서 일어난 대형화재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고 소방인력과 치안의 부재를 지적하며 울분을 토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미국의 국격이라는 뉴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국격이 무엇일까? 최소한 잘살고 못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문제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정도가 가까울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국격은 의문이 많다. 그 중에도 정치인들의 국격은 수준 이하다.
잼버리 사태를 두고도 여야는 협력하지 않았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거기에 서로의 진영에 책임을 전가하며 입씨름을 쉬지 않았다. 잘잘못은 나중에 따져도 된다. 손님들 그것도 미래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157개국 청소년 수만 명을 초대해 놓고 집안싸움으로 자중지란만 이어갔다. 그러니 수준 이하라는 것이다.
유명 가수들의 팬클럽은 왜 우리 가수들에게 망한 대회의 뒤치다꺼리를 시키느냐며 삿대질을 했다고 한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도 엄연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결코 뒤치다꺼리나 허드렛일이 아닐 것이다. 아쉬움은 그 유명한 가수가 나서서 팬클럽의 불만을 설득하고 자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국격은 꼭 남들이 부여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쟁취하여 지켜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식과 같은 잼버리 대원들에게 시원하게 얼린 물병으로 마음을 전하며 응원하는 국민들, 대원들을 태운 수백 대의 버스가 지나갈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며 손을 흔들어 응원하는 국민들, 한국의 전통과 음식, 문화와 비전을 하나라도 더 전하고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쓴 이들이 곧 국격이 아닐까 싶다.
장맛비가 쏟아져 도로가 침수될 때 가던 길을 멈추고 하수구의 오물을 걷어낸 이가 있었다. 물에 휩쓸려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며 손을 내밀어 구출한 이도 있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보고 앞뒤 가리지 않고 물속에 뛰어드는 이도 있고 불속을 뛰어다니며 문을 두드려 사람들을 대피시킨 이도 있었다. 이런 이들이 국격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요15:13)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남을 위하여 나를 참는 마음 그것이 곧 국격일 것이다.
hanmackim@hanmail.net
08.26.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