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約束)

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숨을 쉬고 사는 수많은 동물 중에 오로지 인간만이 약속을 하고 산다. 사람 다음으로 높은 지능을 가졌다는 개나 원숭이도 미리 약속을 하고 짝을 만나러 가지는 않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먹는 것과 믿는 것인데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공자(孔子)는 믿는 것을 앞세웠다. 믿음이 깨지면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애리수라는 가수(歌手)가 있었다. 1928년 단성사에서 ‘황성옛터’를 처음 부른 뒤 여러 곡을 히트시키며 인기를 한 몸에 받던 미모의 가수였다.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사라졌다. 세간에서는 많은 추측이 난무하며 사망설까지 돌았으나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그녀는 잊혀져갔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그녀의 사연이 공개되었다. 그 내막은 ‘약속’이었다. 그녀는 배00이라는 연세대학생과 사랑에 빠졌으나 결혼을 앞두고 만난 시댁에서 그녀가 가수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한 것이다. 자살소동까지 벌였으나 시댁의 완강함을 꺾지 못했고 결국 시아버지와의 굳은 약속을 하고서야 결혼이 허락되었다. 가수라는 것을 숨기고 더는 가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결혼한 2년 뒤 시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남편마저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가수활동을 해도 되지 않겠냐고 그녀에게 제안했으나 이 애리수는 남편의 제안을 거절했다. 비록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으나 약속은 약속이라며 평생을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98세가 되어서야 그녀의 사연이 알려졌고 그 이듬해인 99세에 타계하였다. 그녀의 자녀들조차도 어머니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인간만이 약속을 하고 사는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불신은 깊어지고 사회는 깊은 병에 걸린다. 한국 사람의 80%가 타인을 믿지 못한다는 여론조사는 OECD 국가 중 단연 최고라고 한다. 높은 사람이 식언을 하면 모방하려는 심리 현상에 의해서 서민들도 따라서 거짓말을 하고 덩달아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중병에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약속으로 시작하여 약속으로 끝이 난다. 약속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식언치 않으셨다. 인간이 약속을 어기고 또 어겨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함이 없으셨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

만약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이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는 기독교인들일 것이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그 어떤 것도 반드시 지키실 것이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복을 받은 존재는 단연 기독교인들이기도 하다.

세상은 점점 더 불확실하게 변질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많은 약속들이 헌신짝처럼 취급되어 간다. 심지어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바보라며 비아냥을 받기도 한다. 가짜 뉴스에 내로남불에 아니면 그만이라는 말 등이 상식처럼 난무한다. 입술에는 꿀이 발라졌으나 그 속은 시꺼먼 시궁창이다.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려도 선 듯 그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도처에 걸려든 이를 삼키려는 함정이 그물망처럼 도사리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세상이 이미 되어버렸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넌다는 말이 그저 교훈이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쇠다리도 속속들이 살피며 건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정도가 앞으로 점점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때이기에 우리 주님의 당부는 더 절실하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는 말씀이다. 어둡지 않다면 빛은 소용이 없다. 썩어질 것이 없다면 방부제도 필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온통 캄캄한 어둠이며 썩어질 것들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는 주님의 말씀이 지금 행해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살아 있는 믿음이 절대로 필요할 때인 것이다.

단 한 번도 식언치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며 천 년을 하루 같이 기다리신 주님이 진정 소금과 빛이 절대로 필요한 이 때를 위해 참으신 것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이 순간에도 약속의 한 쪽을 굳게 붙잡으신 채 인간이 그 남은 한쪽을 맞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시아버지와 약속한 것을 평생을 바쳐 지켜온 가수 이 애리수의 그 약속을 모든 기독교인이 사명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원하심에 부응함이 지금 나부터 시작되기를 결단한다. 나는 바로 이런 때를 위해 예비 된 소금이며 빛인 까닭이다.   

hanmackim@hanmail.net    

07.2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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