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원연구소 대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은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할 때 많이 사용하는 사자성어이지만 말세가 이보다 더 하랴 싶은 다사다난함이 바로 현재이다. 그 어떤 말로도 불확실한 오늘과 그리고 내일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이런 때를 예측했음인가? 조선 후기의 뛰어난 실학자였던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 수록된 기행작품 중 한 편에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라는 대목이 있다. 호곡장(好哭場) 즉 울기 좋은 장소라는 의미다. 통곡할 만한 자리로 해석할 수도 있다.
박지원은 벼슬이 없었으나 정사인 삼종형 박명원의 군관으로 청나라를 다녀오면서 일기 형식의 기행문을 썼는데 압록강을 건너 사방이 탁 트인 요동벌판에 들어서면서 ‘한바탕 통곡하기에 좋은 곳이로구나’ 하며 무릎을 쳤다. 그 말을 들은 정진사라는 사람이 “천지간에 이렇게 시야가 툭 터진 곳을 만나서는 별안간 통곡할 것을 생각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묻자 “그렇긴 하나 글쎄 천고의 영웅들이 잘 울고 미인들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 하나 기껏 소리 없는 눈물이 두어 줄기 옷깃에 굴러 떨어진 정도에 불과하였지 그 울음소리가 천지 사이에 울려 퍼지고 가득 차서 마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네. 사람들은 단지 인간의 칠정(七情) 중에서 오르지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을 뿐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만 하고 분노가 극에 치밀면 울음이 날만 하고… 욕심이 극에 달해도 울음이 날만한 걸세.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네.”라며 대답했다. 이에 정진사가 “지금 여기 울기 좋은 장소가 저토록 넓으니 나 또한 그대를 좇아 한바탕 울어야 마땅하겠는데 칠정 가운에 어느 정에 감동받아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자 박지원은 “그건 갓난아이에게 물어보시게. 갓난아이가 처음 태어나 칠정 중에 어느 정에 감동하여 우는지? 갓난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해와 달을 보고 그 다음에 부모와 앞에 꽉 찬 친척들을 보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이런 기쁨과 즐거움은 늙을 때까지 두 번 다시없을 터이니 슬퍼하거나 화를 낼 이치가 없을 것이고 응당 즐거워하고 웃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도리어 한없이 울어대고 분노와 한이 가슴에 꽉 찬 듯이 행동을 한단 말이야. … 갓난아이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히고 좁은 곳에서 웅크리고 부대끼다가 갑자기 넓은 곳으로 빠져 나와 손과 발을 펴서 기지개를 켜고 마음과 생각이 확 트이게 되니 어찌 참소리를 질러 억눌렸던 정을 다 크게 씻어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갓난아이의 거짓과 조작이 없는 참소리를 응당 본받는다면 금강산 비로봉에 올라 동해를 바라봄에 한바탕 울 적당한 장소가 될 것이고, 황해도 장연의 금모래 사장에 가도 한바탕 울 장소가 될 것이네. 지금 요동 들판에 임해서 여기서부터 산해관까지 일천이백 리가 도무지 사방에 한 점의 산이라고는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마치 아교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고금의 비와 구름으로 창창하니 여기가 바로 한바탕 울어볼 장소가 아니겠는가?”라는 대목이다. 칠정 중 슬픔만이 울음의 이유가 아니라 그 모두 다가 울컥 감동이 치받아 소리 내어 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박지원의 생김새는 참신한 샌님과는 한참이나 멀었다고 한다. 우락부락한 외모에 성격까지 괄괄하여 보이고 생각나는 대로 내질렀을 듯하다. 그런 빅지원이 만약 이 시대를 직시한다면 그는 아마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대성통곡하지 않았을까? 이게 세상이냐고? 이게 민주냐고? 이게 자유냐고? 사람은 다 어디에 갔냐고?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 수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언제까지 눈을 감고 귀를 막을 셈인가? 세상에 대하여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하신 주님의 그 간절한 당부를 잊고 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는 미련을 언제까지 지속하려는가?
비좁은 조선을 벗어나 탁 트인 요동벌판을 대하면서 한바탕 통곡하기에 좋은 장소라며 억눌린 상념을 표출했던 박지원의 손가락이 지금 나 혹은 우리를 향해 ‘너는 누구며 지금 무엇 때문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기독교도인 나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다사다난한 이 시대를 보며 온 세상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무어라 하실까?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며 불꽃같은 두 눈을 치뜨시지 않을까? 그러실 하나님께 어찌 반응하겠는가?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 40:6-8).
세상에 대하여 기독교도인 나와 또 우리는 이사야처럼 통곡하며 외쳐야 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 수상한 이 세상엔 지금 우리의 절대 통곡이 필요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니라” 전지전능한 주인이신 하나님이 바로 잡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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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