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원연구소 대표)
기독교인들은 거의 성도(聖徒) 즉 거룩한 무리라 불린다. 이 성도들을 창조주 하나님은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가장 많이 보는 신체는 손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성도의 이름을 새기셨다는 것은 잊지 않으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그들을 이끄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이스라엘 영토는 크지도 않거니와 대다수가 광야와 사막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절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수가 없다. 이에 대해 신 11:12은 이렇게 설명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하나님이 관심하시고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땅이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드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시다. 광야와 사막일지라도 그 말씀 한마디면 시냇가의 옥토로 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돌보심 즉 관심이다. 성도를 그런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기셨다면 하나님의 돌보심과 관심이 지대하시리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自鳴)하다. 그래서 성도를 은혜에 빚진 자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질 만한 어떤 자격도 공로도 없으나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돌보심을 받는 까닭이다.
이 시대를 살고있는 인구가 약 80억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얼마나 될까? 스스로 신자(信者) 혹은 성도라고 자칭하는 수가 20억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체인구의 약 4분지 1에 불과하다. 나머지 60억은 하나님을 알아도 믿지 않거나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념과 체제와 타종교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자들 역시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그네들 역시 마지막 때에 있을 심판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모든 자는 다 죄인이고(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죄인은 필연적으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철칙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믿지 않는 자들 역시 그리스도가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그네들이 이 구원받을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것은 권리가 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0)고 하셨으니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문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는 자들 역시 구원에 대한 갈망은 성도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는 것은 그네들 역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은 마땅한 권리임을 나타낸다.
이들 60억의 권리를 충족시켜야 하는 사명 즉 의무는 20억의 기독교인인 성도들에게 있다. 권리(權利)가 타협될 수 없듯 의무(義務) 또한 유예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도는 전도자 혹은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전도와 선교는 교회의 절대적 사명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권리와 의무에 대해 듣고 불러야 하는 자도 부르게 해야 하는 자도 등한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도라 부르는 20억 중에서 전도와 선교가 의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숫자가 얼마나 될까?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안일무사로 그 엄중한 의무에서 탈피하려고 한다.
얼마 전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아직 다 밝혀진 것은 아니나 맡겨진 의무를 다하지 못한 탓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의무는 이렇게 막중하다. 맡은 자들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면 수많은 생명에게 화(禍)가 미치게 된다. 벌써 그 책임감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하고 법의 엄정한 심판으로 패가망신을 당할 처지에 놓여 있기도하다.
전도와 선교를 소홀히 한 책임은 이보다 훨씬 더 혹독할 수 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을 수도 있었을 영혼이 나의 무책임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지 못해 사망의 심판을 당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으실까? 이는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땅한 권리를 가진 자들이 그것이 권리임을 알지 못해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위험한 이유다.
60억 이상의 영혼들이 우리도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야 되겠다고 요구하지 않으니 20억의 성도들은 그것을 의무로 인식하지 못한 채 세월을 낭비하고 있으니 도적 같이 임할 그 마지막 때가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으랴.
지금은 20억의 성도들이 깨어있어야 할 때다. 그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권리를 지닌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게 하고 믿게 하도록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는 칭찬으로 빚진 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곧 복(福)이다. 복을 받은 자가 되려는가? 그러면 세상의 60억 권리자들을 향해 외치자. 예수 그리스도, 그 구원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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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