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深心)한 사과(謝過)

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세상은 제대로 바르게 알아야 할 것이 의외로 많다. 그 중에 말의 뜻 즉 의미도 포함이 된다. 어설프거나 대충 알아듣게 되면 곧 오해의 소지가 되기 때문이다.

말의 중요성이 강조된 말 중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을 생각해 보라. 말 한마디를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되로 주고 말로 받거나 말로 주고 되로 받을 수도 있음을 되새기게 된다. 말은 분명 ‘아’ 다르고 ‘어’가 다르다는 것을 말을 하는 자도 말을 듣는 자도 잘 새길 필요가 큰 이유다. 

얼마 전 어떤 행사를 주최하는 측의 실수로 인해 의외의 사람들이 불이익을 보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주최 측에서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한 것이 잘못 와전되어 일파만파로 번진 일이 있었다.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지루하고 재미없다’로 잘못 이해하여 벌어진 일이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불이익을 당한 이들을 놀렸다고 이해하면서부터 무식(無識)이 곧 용감(勇敢)한 이슈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의 언어 이해력이 도마에 올랐다. 심심은 깊은 심(深)에 마음 심(心)을 더한 즉 깊은 마음, 간절한 마음을 의미한다. 행사를 주최한 측에서 전한 ‘심심한 사과’에는 조금의 잘못된 의도가 없다. 문제는 그것을 잘못 받아들인 이해부득에서 나타났다. 어떻게 진심을 다한 깊은 사과를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까? 

흔하게 사용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 것 자체가 진심을 다한 사과가 아니었다는 억지까지 등장했다. 세상은 알 수가 없다. 잘못 이해한 것을 수긍하면 사과받은 것이 없어지기라도 하듯 엉뚱한 트집을 이어간다. 정말로 세상살이가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자들의 욕구불만이 아닌가 싶다.

성경에는 참 무서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라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른다는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갈 때 가는 길이 힘겨워 하나님을 원망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원망하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죽겠다는 자들은 죽이고 살겠다는 자들은 살리시겠다는 말씀이다.

자연(自然)은 억지가 없다. 억지가 나타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자연이 될 수 없다. 자연은 곧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소리)에는 진심이 담겨야 한다. 동물학자가 아니라서 장담하긴 어렵지만 아마도 동물들이 내는 소리에 속임수 즉 사기(詐欺)는 없을 듯하다. 천둥·번개가 치는 우레 소리나 바람이 지나가며 울리는 풍경소리는 자연과 같다. 소리의 울림 그 자체가 진실인 까닭이다.

다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사람의 말 즉 소리에는 속임이 많다. 엄하게 단속하고 경고해도 속이는 말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손해를 보는 일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만큼 교묘하게 속이는 사기술이 능수능란한 이유겠지만 이해부득인 것도 사실이다.

사람에 속고 사랑에 속았다고 한다. 청춘도 잃고 돈도 잃고 건강을 잃기도 한다. 뱀에게 속은 오기라도 발동한 탓인가? 그 이후부터 사람은 말(소리)로 사람을 속이고 동물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선수가 되었다. 속고 속이고, 속이고 속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속는 원인은 이해부족에 있다. 그 중에도 보이스 피싱의 피해는 거의 욕심이 앞선 상황판단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판사나 검사, 경찰 등이 이 보이스 피싱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도는 것을 보며 ‘어떻게’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지만 열이서 하나를 지키지 못한다는 말이 실감되기도 한다.

사건사고 뒤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가짜 뉴스는 어떠한가? 일주일 전쯤 터진 한국의 카카오 사태에도 가짜 뉴스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가짜 뉴스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선동은 쉽지만,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가짜 뉴스는 거의 표현의 자유라는 매우 이상적인 방패를 앞세운다. 사회적 문제가 될 만한 사건치고 가짜 뉴스가 판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이 가짜 뉴스는 나라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분야에까지 거침없이 파고든다. 유명 대선 후보가 이런 가짜 뉴스로 인해 낙선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를 문제 삼으면 곧바로 표현의 자유를 운운한다. 

보이스 피싱이든 가짜 뉴스든 그 저변에는 정확한 판단의 부재와 이해부족이 자리한다. ‘심심한 사과’라는 말이 진심을 다한 사과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 의미와 반대가 되는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말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 말의 뜻과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세상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는 말씀을 그대로 믿거나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혼돈(혼란)이 왔고 그 여파는 이제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되 곧 제대로 바로 아는 것이 힘이 되어야 보이스 피싱도 가짜 뉴스도 판을 치지 못할 것이다. ‘내 탓’이 먼저임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자신을 지키는 방패임을 잊지 말자.       

hanmackim@hanmail.net    

10.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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