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살아있는 것들의 인연은 천연(天緣)이다. 모든 만남이 다 하나님이 정하신 섭리 안에서 이뤄지는 까닭이다. 이는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다른 생물 혹은 생물과 생물의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만물이 다 창조주의 범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에는 암수가 있다. 그래서 생육하는 것 또한 철칙(鐵則)이다. 하나님은 흙으로 자신을 닮은 사람 즉 남자를 만드신 뒤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그리고서 그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이셔서 그 남자를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비뼈를 취해 여자를 만드셨다. 하나님이 데려오시는 여자를 본 남자는 대뜸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며 반겼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다. 원숭이에게 아침에 상수리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하자 화를 내어.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하니 좋아하더라는 고사다. 육신(肉身)의 인연도 이와 같아 믿을 바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데려오시는 여자에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던 그 남자가, 여자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 먹은 뒤 이를 책망하시는 하나님께 하나님이 내게 데려오신 그 여자가 꾀어서 먹었노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보아 인심(人心)은 참 정함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사람을 믿을 수 없음에도 또한 믿지 않을 수 없는 아이러니 때문에 인생은 고(苦)라고 한다. 그럼에도 세상은 궂은 날보다는 좋은 날이 더 많다는 것에 소망이 있다. 사람이 믿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은 분명하나 극적인 믿음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을 닮은 신성이 훼손되기는 했으되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적잖이 남아있으므로 찔림을 받는 까닭이다.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으나(아쉽게도) 이전에는 영화를 보다가 핍박을 받던 의(義)가 불의를 이기는 장면이 나오면 아낌없이 기립박수를 쳤다. 그렇게 박수를 치는 사람들 중에는 분명 불의에 가담한 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 역시 의를 응원하였다. 하나님이 그들 속에도 선한 것을 알만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점 더 불확실성이 팽배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암울한 현재를 파고서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도 있다. 내일을 기대한다는 행동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내일이 전혀 보이지 않는 현재에 가장 적합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니”(민 14:28)는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이다. 지금 흘러가는 세상의 어떠함(환경)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결코 어쩌지 못한다.
돈에 대해 심히 쪼들리며 잠조차 자지 못한 채 숨을 쉬는 것마저 버거워할 때 가까이 지내는 목사가 ‘돈이 없냐? 믿음이 없지!’라는 말을 했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다. 하늘에서 금덩이가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으되 두 콧구멍으로 숨을 쉬며 해결해 나가고 있다. 믿음 덕분이다. 수십 마리의 말벌이 토종벌통을 공격하고 있는 것을 보고 급한 김에 나무 막대를 휘두르며 어찌어찌 벌들을 쫓기는 했으나 그 와중에 말벌에게 네 곳을 쏘였다. 첫날의 뻐근한 아픔이 가시자 감당되지 않는 가려움이 시작되었다. 3일을 거의 자지도 못할 만큼 가려움은 지독했다. 얼음찜질을 하며 십여 일이 지나자 결코 멈출 것 같지 않던 가려움이 조금씩 사라졌다.
상실(喪失)의 고통과 슬픔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기도조차 나오질 않는다. 그러나 이에도 약은 있다. 세월(歲月) 즉 시간이다. 얼마 전 태풍 힌남노가 많은 피해를 남겼다. 그러나 그 엄청난 위력을 뽐내며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던 맹폭함도 시간이 지나자 약해지고 결국 소멸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렇게 흥망성쇠(興亡盛衰)로 변천하며 적아(敵我)의 구분이 모호하고 진실조차 진리가 되지 못하나 세월은 이 모든 것을 다 아울렀다. 모든 물이 흘러듦을 다 수용하는 것이 바다이듯 세월은 세상의 희로애락을 보듬는다. 그러나 다는 아니다. 죄의 문제다.
이 세상 죄의 삯은 오직 사망이다. 이는 그 어떤 진실로도 해결할 수 없다. 모든 물을 수용하는 바다도 모든 것을 보듬는 세월도 죄의 문제만큼은 불가하다. “죄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이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적이 없다.
잠시 잠깐 후면 변할 것이라 해도 지금 당장은 진실일 수 있다. 세상에 속한 진실의 한계에 묶여 있을 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진리가 주어졌다. 이는 그 무엇에게도 빼앗겨서는 안 될 은혜며 가장 값진 선물이다. 세상에 속한 진실 안에서 하늘에 속한 진리를 캐내는 지혜와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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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