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인생’이란 소설의 작가이자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다. 소설처럼 인생도 마침표가 찍히기 전까진 그 누구도 엔딩을 알 수 없다. 지금, 나이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것이 있는가? 100세 시대에 나이는 장애물이 아니다. 포기가 아니라 기회의 시간으로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는 차고도 넘친다. 당신은 나이만큼 늙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만큼 늙는 것이라고 조지 번스는 말했다.
인생은 그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다 고(苦)라고 말한다. 남의 뼈가 부러진 고통보다 나의 손톱 밑을 파고든 가시의 고통이 더 크듯 크고 작다는 것은 객관적일뿐이며 주관적인 힘겨움은 내가 당했을 때가 더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어 눈물까지 쏟게 되는 시(詩)나 노랫말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글씨나 소리로 머물 수도 있다.
천이면 천, 만이면 만이 다 다른 환경과 상태인지라 다양한 요구나 주장을 하나로 묶거나 정의를 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공정과 정의가 법이면 배려와 양보는 그래서 정에 가까운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며칠 전 대한민국의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1987년 시작된 직선제 이후 가장 적은 표차로 당락이 갈렸다고 한다. 정해진 규칙이라서 한 표라도 더 얻은 자는 승자고 뒤진 자는 패자가 되는 승자독식의 게임인지라 명암은 분명하고 그것이 앞으로의 5년을 좌우하며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도 인생이다.
성공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보고 듣고 말하고 오가는 것일 수 있다. 건강한 사람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장애를 지닌 이들에게는 최고의 목표가 되는 까닭이다. 성공이라는 척도(尺度)를 대부분 각 분야에서의 일인자로 규정하지만 누구는 청소부나 누구 혹은 무엇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강도를 만난 이웃을 기꺼이 돕는 사마리아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도 그 나름의 인생이다.
중국에 들어가서 처음 배운 단어가 마포(麻布/mabu)였다. 사전에서는 마포를 삼베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는 걸레를 뜻한다. 처음엔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20여 년이 지난 뒤부터 왜 중국에 가서 처음 배운 단어가 걸레였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하고 많은 좋은 단어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걸레라니?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부정부패, 불공정, 불협화음 등 단어의 첫머리에 붙는 부(不)나 불(不)을 씻어내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한 것이 바로 걸레다. 더러운 것뿐 아니라 부정적인 것들을 말끔히 쓸고 닦을 수 있는 것은 걸레 말고 다른 것이 없다. 더러움을 깨끗하게 정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바로 걸레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15억이 산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은 사회주의체제로 종교의 자유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사람으로 원죄와 자범죄를 지닌 죄인들이기에 그리스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죄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다 적용되는 인민(人民)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상과 정치는 이 당연한 권리를 억지(抑止)하고 있다.
전 세계의 모든 성도가 분명히 명심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은 남녀노소 동서고금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다 복음 즉 구원을 받을 유일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믿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선교와 전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必須)며 의무가 아닐 수 없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그래서 명령인 것이다.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정의를 하며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만 자기에게 맞는 답을 찾아 이정표를 따라 걷는 그 자체가 어려우며 힘겹다고 한다. 거기에 이제 백세 시대에 진입해있다. 길수록 그만큼 더 쓰디쓴 고는 가중될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답을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 해도 그 길을 가기가 힘겹기만 한 인생에 대해 해석(解釋)하기 나름이라 정의해본다. 중국에 가서 처음 배운 단어가 걸레였는데 그것이 체제와 사상으로 병든 불편부당한 것들을 다 씻어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처럼 자기의 인생을 자기의 손아귀에 움켜쥔 듯하나 절대로 움켜쥔 것이 아닌 자기의 인생을 해석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 해석이 절대자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면 백세 인생의 복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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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6.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