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홀씨

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세상에는 아주 작은 것들이 놀라운 생명력을 보이기도 한다. 민들레 홀씨도 그 중 하나다. 바람에 휘날리다 척박한 땅에 떨어져도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홀씨처럼 코로나 19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 갇혀 허우적대는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 무엇이 나타나는 2022년이기를 소망해본다. 

선각자들에 의하면 민들레 홀씨처럼 선한 영향력을 이 세상에 끼칠 수 있는 그 무엇을 소망은 하되 그 무엇이 바로 나 또는 우리가 되기를 힘쓰는 것이 더 필요하며 중요하다고 교훈한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쉬운 게 절대 아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의 희생이 아닌 누군가의 희생으로 고양이 목에 방울이 달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절대 조건은 죄가 없어야 했다. 죄인으로서는 죄를 대속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에덴동산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죄가 없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따라서 사람으로서는 결코 사람의 죄를 대속하지 못한다. 그 결과는 영원한 죽음이다. 이것을 하나님은 가슴 아파 하셨다. 죄의 삯은 사망임을 선포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창조는 매우 특별했다. 모든 우주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창조되었다. 있으라 하시니 있고 나뉘라 하시니 나뉘었다는 것이 창세기 1장의 증언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달랐다.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령이 된 것이 바로 사람이었다. 또 그렇게 만드신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유일한 피조물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을 빼닮은 사람과 함께 에덴동산 거니시는 것을 즐기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리도 애지중지하신 사람 그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며 배반하기에 이르렀다. 관계가 깨어졌을 뿐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삯은 죽음이었다. 사랑의 하나님은 이것을 그냥 지켜만 보실 수가 없으셔서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자들의 그리스도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외치셨다. 다 이루었다! 

지금 이 시간 그렇게 세상을 향하여 외치신 주님의 외침이 들리는 모든 자에게는 빚이 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에겐 사람을 살리고 죽일 권세가 없다. 그럴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그 뒤에 빚진 자가 해야만 하는 일이 이어진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이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구원의 빚을 진 자들이 할 일 즉 사명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도 믿지도 부르지도 못하는 자들’이 ‘듣고 믿고 부르도록’ 전파하는 발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그 발을 아름다운 발이라고 기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는 것은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에 흩어지되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빚진 자가 전하는 복음이 때로는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떨어져 결실을 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옥토에 떨어지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하게 된다. 옥토에 떨어진 씨가 많은 결실을 하는 것처럼 빚진 자가 외치는 그 복음에 의해 하나님의 잃어버리신 자, 그 하나를 되찾게 된다면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에선 잔치가 열릴 것이다. 

새해가 시작된 이 첫 달에 나와 우리 즉 빚진 자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실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소망한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의 조카 롯을 그 죽음의 성에서 건져내셨다는 말씀이다. 나 또는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되는 그 무엇이 사하심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시는 것과 같은 나와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신 것은 믿음이었다. 그렇다면 이 한 해 하나님이 보실 나와 우리는 아름다운 발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는 아름다운 발은 곧 전파하는 발이었다. 나와 우리가 외칠 그 복음을 들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거룩한 구원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은, 민들레 홀씨가 척박한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며 실한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죽을 자는 살리는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이 그 무엇이겠는가?    

01.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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