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사람이 중병이 들면 죽게 된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인(死因)이 아사(餓死)라는 이해부득의 진단이 나온다고 한다. 병이 들어서 죽었는데 아사 즉 굶어서 죽는다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난 한 달여를 심히 앓았다. 몸살이라 가볍게 여겼는데 아니었는지 간수치가 높다며 상급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권유와 함께 체온도 39도를 넘나들며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한 고통을 맛보았다. 열이 39도가 넘게 오르니 입맛이 사라졌다. 어떤 음식도 먹을 수가 없었다. 몸이 그 맛나던 음식들을 모두 거부했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림 속에 있는 것들이니 당연하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들이 착각임을 깨달았다.
그림 속의 떡이 아니라 실제 내 앞에 산해진미가 놓였어도 그 맛있을 음식 한 젓갈조차 내 입속으로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의사가 열이 오르면 입맛이 떨어진다고 알려줬음에도 설마 했던 나의 무지는 사실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한 곳 편한 곳이 없었으나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도 무효였다. 십여 일이 지나면서 기력이 고갈되어 앓는 소리조차 입 밖으로 새나오지 않았다. 검사를 받든 입원을 하라는 성화에도 그동안의 건강했음을 믿고 버텼으나 그 무엇도 먹을 수가 없으니 점점 더 기진해갔다.
욥이 고통 중에 자기의 난 날을 저주했던 것이 이해되었고 멈추지 않는 고통에 시달리다 못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환자들의 울부짖음이 실감되었다(나의 아픔은 욥이 당하고 중환자들이 겪는 그런 고통에는 비교할 수도 없었을 것임에도). 지옥이 이렇겠지 싶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불편이 지속되는 것은 미칠 노릇일게 틀림없다. 그러나 지옥은 미칠 수도 없는 곳이리라. 고통을 잠시라도 멈출 그 어떤 방법도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일 것이다. 기진한 상태에서도 지옥을 떠올리며 감사가 튀어나왔다. 죄인 중에 괴수와도 같은 내가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옥만은 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기대는 곧 감사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쇤 목소리로 토하듯 고백하는 감사에 따라 물을 마시게 되고 미음을 몇 술씩 뜨게 되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회복이 되고 있다.
고통의 그 순간들은 생각만으로도 진절머리가 쳐지지만 지나노라니 얻은 것이 많다. 지옥은 절대로 갈 곳이 못 된다는 것과 지옥에 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 내게 은혜로 주어졌다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깨달은 영(靈)의 입맛이다. 육신에 병이 생기면 입맛이 떨어져서 밥 한 숟가락조차 먹을 수 없다면 똑 같은 복음을 듣고도 그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의 영적인 상태가 맘에 걸린 것이다.
이제껏 삼십 몇 년 동안 선교사로 불려왔으면서도 내가 부르짖는 복음을 들었거나 들을 자들의 영적상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복음 즉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살길임을 외쳐도 반응이 없는 자들에 대해 화인을 맞아 귀가 닫혔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자들이기 때문이라 여겼었다. 그러니 생명의 말씀조차 들리지 않는 것으로 치부했다.
육의 입맛이 열이 내리고 기력이 회복되면서 되살아나듯 복음을 복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의 그 영의 입맛을 먼저 되살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나 혹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어진 은혜가 먼저였고 예수님이 자기의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도록 주신 믿음 역시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었듯 내가 전할 복음을 들을 자들에게도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성경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외친 복음을 들었거나 외칠 복음을 들을 자들에게도 복음이 복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 것이 외치는 자의 사명인 것이다.
‘아니면 말고’는 세상에서나 할 수 있는 변명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분이다. 병든 자들의 의사로 이 땅에 오신 분이다. 죄인들은 구원을 받아야 하고 병든 자들은 나음을 입어야 한다. 그런데 영이 병들어 복음을 복음으로 듣지 못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그런 자들의 영의 입맛을 되살려야 한다. 이는 곧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외치는 자는 복음을 들어야 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내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도 임하도록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육의 입맛은 이 땅에서만 유용하다. 그러나 영원이라는 이 다음의 삶을 위해서는 복음을 복음으로 들을 수 있는 영적 입맛이 절대로 필요하다. 육의 입맛이 떨어지면 신해진미가 그림의 떡이 되는 것으로 끝나지만 영의 입맛이 떨어지면 모든 불편이 영원히 지속되는 그 지옥을 면할 길이 없다. 복음을 먼저 받은 성도들은 이 점을 절대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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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