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방울

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태풍 마이삭이 막 지나갔다는 재난방송을 보다가 이어진 아침 프로의 생방송을 보았다. 시청자 코너에 방송인들이 나왔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아나운서가 된 계기를 소개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대학 4학년 때 어려운 이들을 돕는 방송을 우연히 보았는데 진행하는 MC의 눈에 고인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질 듯 말 듯 맺혀 있는 것을 보면서 “아~ 백천 마디의 말보다 공감하며 흘릴 수 있는 눈물 한 방울이 더 큰 영향력을 줄 수 있구나!” 하는 감동을 받게 되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며 아나운서가 되었다는 소개를 했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게 흘러간다. 특정한 소외계층이 갑자기 많아진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을 엄습한 코로나19 때문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어 우한바이러스로 불렸으나 발원책임을 나라나 지역에 묻는 것이 부당하다는 중국의 강한 반발(?)을 의식한 탓인지 코로나19(COVID 19)로 명명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아니라 그 영향력이다. 8개월여 만에 전 세계에는 수천만 명의 확진자와 수백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지금 이 시간에도 걷잡을 수 없는 파급력으로 동서를 막론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은 채 전파되고 있는 중이다. 이로 인해 객관적인 통계 속에는 주관적인 어려움과 고통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 하소연해도 부족할 정도의 사연들이 넘쳐난다. 

코로나19가 속히 끝나지 않고는 내일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생존의 한숨이 태풍의 강한 바람처럼 너나 없는 가슴들을 강타한다. 소외된 이들의 처절한 상황이 안타까워 MC가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이 보는 이들을 감동시켜 많은 이들이 돕는 손길을 보태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두가 다 어려운 전방위적 위기상황에 처한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포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선진국 미국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 인심은 곡간에서 나온다. 곡간이 비면 나눌 것이 없고 소외된 이들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미국과 같은 부잣집 곡간마저 비게 된다면 소외된 이들에겐 비빌 언덕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그것을 끄는 것이 더욱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이를 뛰어넘는 속담이 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이다. 먹을 것이 남아돌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을 것도 모자라지만 그 모자란 것도 나눈다는 인정이다. 잠언 17장 1절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한다. 어쩌면 내일이 불확실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에 대한 촉구며 도리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직격탄 상황은 대다수의 사람과 기업에 극심한 고통을 안기고 있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남다른 부를 축적하며 승승장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려운 곳에 자신의 넉넉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한 방울의 눈물일 것이다. 

사실 인심이나 인정은 어려울 때 더 빛나는 가치다. 어려움은 또 금전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배신과 이별, 질병과 재난, 실패와 좌절 등의 심리적인 요인에 더 필요한 것은 관심과 배려, 위로와 공감일 것이다. 이때 같이 손을 맞잡고 흘려주는 한 방울의 눈물은 천군만마와 같은 응원이 되고 살아야 하는 이유로 다가설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전통이며 삶이다. 무엇보다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동력이 된다. 

글로벌은 이해득실을 가릴 때 사용되기보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포용을 전제한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백신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힘 있는 나라들이 과연 글로벌을 언급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설사 차갑게 식어버린 인정일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이라면 더 따뜻하게 덥힐 수 있다. 이는 기독교의 책임이며 의무다.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농민에게 시원한 음료를 건네며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자 ‘예수 믿으면 코로나 걸려요’로 화답했다는 말을 들으며 하나님의 찢어지는 가슴앓이가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런 세상의 불신과 몰이해를 되돌리고 회복하기 위해 성도와 교회가 흘려야 하는 진심어린 한 방울의 눈물이 절대 필요하다. 

기독교와 교회가 코로나19와 태풍·장마 등의 자연재해, 소외로 고통을 받고 있는 현장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흘릴 수 있는 한 방울의 눈물은 치료와 회복뿐 아니라 기독교의 가치를 세상에 전하고 알릴 수 있는 가장 진정한 눈물일 것이다. 공감하며 흘리는 한 방울의 눈물을 내가 흘려야 되겠다.                    

hanmackim@hanmail.net    

09.2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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