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철조망으로 둘러 친 울타리 안에 두 마리의 개가 산다. 그저 산다. 참 신통치 않은 개들이다. 지인이 준 강아지들이라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방치하듯 사료를 축내며 키우고 있지만 주인의 무관심을 아는 듯 이미 커서 성견(成犬)이 되었음에도 역할이 거의 없다. 낯선 사람이 와도 짖지 않고 바로 옆에 비둘기들이 사료부대를 뚫어도 그 쉬운 쫓는 역할도 하지 못한다.
한 배인 암수라는데 수놈이 하도 말썽을 부려 목줄을 채워놓았다. 철조망의 여기저기를 뚫어 개구멍을 내고 나와서는 입으로 물 수 있는 것들은 다 물어다 난장판을 만들어놓기 때문이었다. 제 어미는 아주 명민했다는데 새끼들은 그렇지도 않은 듯 심심찮은 방법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목줄을 묶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욕구 때문인지 머리가 들어가기 어려운 작은 철조망 구멍에 재주도 좋게 머리를 집어넣고는 꼼짝달싹을 못한 채 눈만 멀뚱거리는 것이다.
한두 번이 아닌 대여섯 번이 넘으니 미련하다는 말조차도 아까울 정도다. 어찌하나 보려고 하루를 놔둔 적이 있는데 작은 철조망 구멍에 꼭 낀 머리를 제 재주로는 빼내지를 못한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혀를 차며 철조망을 자르고 머리를 빼내주다 문득 나의 자화상이 낑낑 대는 수놈의 머리에 겹쳐졌다.
인간의 죄 즉 나의 죄가 그렇다. 아담으로부터 이어온 원죄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내가 저질러왔고 어쩌면 앞으로도 반복해서 저지를 자범죄가 작은 철조망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고는 내 힘으로는 절대 빼내지 못한 채 쩔쩔매는 처지가 너무도 닮아 있다. 철조망은 웬만큼 신축성이 있다. 그러니 머리를 집어넣을 때는 머리보다 작은 구멍으로도 어찌어찌 머리를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머리가 들어가고서 신축성이 머리보다 작은 목을 꼭 조이면 철조망을 벌리거나 절단하지 않고는 머리를 빼낼 방법이 없다. 물론 철조망 구멍보다 더 바싹 마르면 가능할 것이나 몸은 말라도 머리통은 거의가 뼈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도 거의 없다. 누군가 빼내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이 저지르는 죄도 그렇다. 죄를 지을 때는 그 죄가 주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작은 구멍 즉 윤리와 도덕, 법과 규율을 넓히는 신축성으로 작용할 것이다. 욕망과 자랑이 그 결과를 망각하게 하거나 희미하게 만들 것이다.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고나니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여겨진 것처럼, 그래서 뱀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그때처럼 사람이 이 땅에서 지을 수 있는 죄성(罪性) 역시 인지를 마비시킬 만큼 강렬하다.
전 인류는 아닐지라도 사람 중에 혹 몇이거나 아니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죄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었다면 성자 하나님께서 몸소 인간의 몸을 지닌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만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셔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람 중에 그리스도가 필요치 않은 자는 단 하나도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는 것이 성경의 증거다. 하나님이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실 때 아브라함이 간청했다. 거기서 의인 열 명을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창18:32 참조) 하나님은 의인 열 명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멸하시지 않겠다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의인 한 명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냐고 물었어도 하나님은 그러마고 대답하셨을 것이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의인 한 명을 찾지 못해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단 하나도 예외 없이 죄로 인해(죄의 삯은 사망) 죽어야 하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이 죽음의 덫을 피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는 살 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신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모른다. 이슬람권, 사회주의권, 힌두교권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다수는 그네들의 구원자도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 알지도 듣지도 못해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있다. “누구든지 주(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는 복음의 권리를 빼앗기고도 그조차 알지를 못한다. 전도와 선교는 그래서 필요하다.
죄악의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는 절대 자신의 힘으로는 그 구멍에서 머리를 빼낼 수 없는 사람에게, 사람이 지은 죄를 해결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로 필요하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는 찬송이 떠오르며 철조망 작은 구멍에 머리가 낀 채 낑낑대는 개를 보며 깨닫는 교훈이 새삼 새롭다. 이 세상에 필요치 않은 것은 없다. 짖지 못하고 사료만 축내는 말썽꾸러기 개들을 통해서도 이런 생명의 깨달음을 하나님은 준비해주신다. 쓸데없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가 감사할 뿐이다.
hanmackim@hanmail.net
08.01.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