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교회 1000년 - 어둠에 잠긴 구속역사의 현장 (30)

조진모 목사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마리아 

신약 성경에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모두 4명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당시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이들 중 매우 극적인 삶을 살았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다. 우리는 성탄절과 고난주간에 마리아의 삶을 묵상한다. 

어린 처녀의 몸에 성령을 통해 예수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엄청난 일을 경험해야 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매우 영광스런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갑자기 불행과 위험을 감수하여야 하는 상황이 밀어닥친 것이었다. 나아가서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현장에서 그 처참한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예수는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울고 있던 어머니를 바라보았고, 운명 전에 요한에게 친히 부탁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은 예수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친밀한 관계를 우리에게 비교적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 후로 마리아는 우리의 관심으로부터 사라진다. 성경이 그녀의 삶이나 활동에 대하여 침묵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재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마리아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근본적으로는, 그녀가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지만 지난 2천년의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보다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마리아신학이 초대교회 교부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마리아의 원죄를 부정하는 교리가 발전하였다. 그 후, 중세교회를 거치면서 마리아를 숭배하거나 유일한 중재자로 받아들이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이단적 신학으로 변질되었다. 다행히 16세기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마리아신학의 위치가 두 갈래로 현저하게 나뉘어졌다.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따르는 전통은 마리아를 성경에 기록된 이상의 인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이와 반대로, 로마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논할 때에 마리아 교리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12세기 이후 중세 교회가 성모숭배 신학의 확고한 틀을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인가? 이 문제를 놓고 431년에 소집된 에베소 공의회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겼으며 그 후 451년에 채택된 칼케돈 신경을 통해 교회가 공식적인 칭호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근본이시며 지존하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낳은 마리아의 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이 중요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마리아신학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이유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진행되던 기독론 논쟁을 중심으로 등장한 이단을 배격하기 위하여 칼케돈 신경이 채택되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네스토리우스파에 속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하여 인성과 신성이 연합된 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에베소 공의회에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 부르게 된 것은 마리아를 높이려는 의도가 아니었으며, 도리어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는 칼케돈 신경이 마리아의 신적 모성 교리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초대교회 교부들로부터 마리아의 사역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중재자’ 개념이 시작되었다. 마리아의 처녀성에 대하여 주로 하와와 비교되었다. 하와는 유혹에 빠져 죄를 지어 부패된 몸으로 가인을 낳았다. 그러나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낳았으며, 그 후에도 계속하여 순결성이 유지되었다. 이와 같이 마리아는 하나님이 주도하는 구원 역사의 중심적인 인물로 서서히 부상된 것이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교부들이 모두 마리아의 무오를 주장하였을까? 아니다. 인간의 원죄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신학을 발전시켰던 초대교회를 대표하는 교부 어거스틴은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었다는 주장을 허용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배격하였다. 그 결과 마리아신학에 대한 논쟁이 초대교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8세기가 되어 마리아의 중재자 개념이 교회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크레테의 안드레(Andrew of Crete, 660-740)는 마리아의 영원한 순결성을 주장하면서, 창조주의 어머니로서 율법과 은혜 사이의 중재자라고 소개하였다. 심지어 마리아의 위치를 크게 부상시키며 만물이 그녀를 통해 거룩하게 되었고 죄가 사라졌다고 주장하였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누가복음 1장 42절에 기록된 내용, 즉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향해 모든 여자들보다 복이 있다고 언급한 내용이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에 비해 높은 위치에 있다는 개념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을 가능하게 한 경배의 대상으로 부상된 것이다. 

 

마리아 신학 

중세교회를 통과하면서 마리아신학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마리아에 대한 관심은 주로 동방교회를 중심하였지만 서방교회에서도 11세기에 들어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클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 1090-1153)는 오직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올라갈 수 있고, 또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내려올 수 있다고 하였다. 비록 버나드는 마리아를 영적 통로로 이해하였지만 초대교회 이후 내려오던 그녀의 무오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비판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어거스틴의 신학적 전통에 굳건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버나드는 마리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허락하신 매우 특별한 역할에 국한할 것을 종용하였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은 그리스도이시다. 마리아가 무오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녀도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녀를 우상화하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리아도 우리와 같이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교회 안에서 마리아신학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탁발수도회를 창설한 아시시의 프란시스코(Francis of Assisi, 1181-1226)가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수록 마리아의 사랑을 더욱 가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마리아가 처해 있었던 궁핍한 상황 또는 그녀가 가난은 선택한 것에 대한 존경심이 자극되었기 때문이다. 프란시스코는 마리아의 신분적 위대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그녀를 구원의 중재자 그리고 협력자의 위치에 올려놓는 마리아신학을 구축하였다. 

프란시스코를 이어 그의 제자인 파두아의 안토니(Anthony of Padua, 1195-1231)에 의해 마리아신학이 발전되었다. 안토니는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난 사실이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정설이라고 주장하였다. 비록 성경에는 기록이 없으나 사도들의 가르침에 이 교리가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그는 마리아가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죽음의 원인이 되는 원죄가 없이 태어났기에, 당연히 예수의 부활과 승천과 같이 마리아도 같은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21-1274)의 이전까지 소개된 마리아신학의 전통 속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녀는 무오 중에 잉태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유일한 중재자라고 소개하였다. 또한 마리아의 승천 역시 교회가 받아들여야 할 전통이라고 믿었다. 나아가서 보나벤투라는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유사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마리아의 역할을 잘 이해하려면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계획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마리아는 신성과 인성의 연결고리이다. 나아가서 그녀의 삶 전체가 모든 죄인이 따라야 절대적인 모범으로 교회에게 주어졌다. 

둔스 스코투스(Dums Scotus, 1265-1308)는 스콜라신학을 발전시킨 장본인으로서, 마리아의 무오 잉태를 중심한 마리아신학을 교회에 정착시킨 인물이다. 그는 마리아의 무오 잉태는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구원의 보편성을 더욱 확고히 한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마리아가 모두 동질성을 지니고 존재하는 것으로 예정된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는 원죄를 아담의 불순종으로 생긴 결과, 즉 하나님께서 죄를 선언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계획 아래서 마리아를 죄로부터 면제하신 것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죄를 지은 것이 맞는다면 마리아는 원죄로부터 제외되었다는 것도 옳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리아는 죄의 결과인 죽음에 해당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과 승천하였다고 결론지었다. 

흥미로운 것은 스코투스의 논증이 중세교회 전체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마리아신학은 끊임없이 논쟁거리가 되었고,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중세교회가 마감된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로마가톨릭교회는 마리아신학을 더욱 발전시켜왔으며, 현재 마리아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오직 그리스도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신학은 반드시 배격되어야 한다. 현재 그들은 마리아를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소개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받으셔야 할 지위를 그녀에게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리아신학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제한하는 비성경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에게만 주어진 영광, 권세 그리고 구속 사역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오류는 마리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심지어 그를 예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마리아를 신격화 하는 것은 우상숭배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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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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