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가나, 익어 가나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때가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그렇다. 황금물결이 뒤치는 가을 들녘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며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곡식과 과일 하나하나에게 이렇게 익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냐고 물어본다면 한결같이 대답하리라. 따사로운 햇볕이 찾아온 시간도 있었고,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 시간도 있었지만, 매섭게 추운 밤도 있었고, 나를 기어코 떨구려는 듯한 폭풍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익음의 시간까지 얼마나 아팠겠는가, 얼마가  힘들게 버텼겠는가.

아무도 오곡백과를 향해 "늙어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대신 "영글어간다, 익어간다"고 그들의 힘들었던 오랜 시간들을 인정해 주고, 위로해 주고, 치하해 준다. 그 말을 들은 오곡백과는 지난 모진 세월을 다 보상받았다는 듯이 눈물을 훔치며 마음 깊이 고마와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에게도 익어간다고 말해주는가. 누군가로부터 "목사님, 나이가 멈추었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너무 고마운 표현이다. 그렇게 둘러 표현하지 않고 다이렉트로 말하기도 한다. "목사님, 예전보다 늙어 보여요" 어찌하겠는가. 사실인 것을. 그런데 "목사님, 많이 익어보여요" 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바램"이라는 노래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할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우린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 가는 겁니다" 늙어 가는 삶이 아니라 익어가는 삶을 바래고 있다.

내일이면 필자가 섬기는 교회가 설립 5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린다. 오페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셨던 지난 50년의 이야기를 만들어 수개월 동안 기도하며 연습해왔다. 감사예배를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교회의 설립때부터 불러 사용하신 선진들을 깊이 생각하며 교우들과 함께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고 목이 메이기도 하였다. 어제는 교회 설립때부터 충성을 다하시던 원로 장로님의 천국환송예배가 있었다. 늙음이 결코 무례한 표현은 아니나 그동안 삶을 "늙음"으로만 끝내지 않고 "익음"으로 마치신 선진이시다. 이렇게 아름다운 선진들 때문에 내일은 가슴이 더 북받치리라.

10.2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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