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차면 기우나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오랜만에 고국에서 맞는 추석이다. 미국에는 추수감사절이 있기에 추석에 대한 감각이 거의 없었으나 한국에서는 가장 큰 명절임을 생생히 보고 있다. 추석은 달과 연관되어있다. 일 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이다. 그러나 달은 그 모습 그대로 있지 않다. 한 달 동안 부지런히 우리에게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름도 각각이다.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리고 그믐달. 다른 모습, 다른 이름의 달을 보고 많은 시와 노래가 지어졌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반달"이라는 동요이다. 왠지 슬프게 불렀던 그 노래는 저 멀리 있는 달이 마치 눈앞의 강가에서 떠다니듯, 그리고 거기에 토끼 한 마리가 타고 있듯 한 상상을 자아낸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달은 꽉 차기도 하고 곧 기울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매일 일정하지 않다. 무엇인가 채워진 듯하다가 이내 사라지고, 다 사라진 듯하다가 점차 무엇인가로 채워지곤 한다. 인생이 언제나 밝은 보름달 같을 수는 없다. 꿈이 아니면 어찌 매일을 골든타임 같은 보름달로만 살 수 있겠는가. 달이 차면 곧 기우는 것이 이치이듯 우리의 삶도 그려러니 한다. 그러나 인생은 그런 것이려니 하지 말자. 차면 다음 날부터 기우는 보름달보다 더 환하게 매일을 살 수 있다. 이런 수상 소감을 남긴 여배우가 있다. 그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이어 몇몇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이렇게 소감을 이어갔다. "내 삶이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했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 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4년 전 한국의 55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로 여우 주연상을 받은 김혜자씨의 수상소감이었다. 그 때도 많은 이의 눈물을 자아냈고 지금도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케 한다. 

 

찼다가 기우는 달이 주는 교훈도 크다.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는다. 깊이 아로새겨야 한다. 그러나 "보름달"의 교훈을 넘어 "눈이 부시게"의 삶도 있지 않은가. 고국에서의 추석 연휴인데 막상 갈 곳은 없다. 아버님 어머님, 장인 장모님, 모두 하늘나라에 가 계시다. 많이들 그러시지만 이 땅에서는 아내도 나도 고아다. 그래서 추석에 부모님들이 앞서 가 계신 보름달 너머의 하늘을 다시 바라본다. 그러면서 내 삶의 진정한 소망은 찼다가 기우는 저 "보름달"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날마다 "눈이 부시게" 살아가게 해주시는 하늘 아버지께 있음을 다시 생각한다.

 

09.30.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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