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MLB(미국 메이저 리그 야구) 경기에서도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아직 투아웃인 데 쓰리아웃으로 착각하고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다가 경기를 아예 망치거나 시합에서 아주 망신당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것도 1점차 승부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런 것이라면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동료들의 어이 없음, 팬들의 허탈감, 감독의 속 터짐 그리고 상대팀의 빵 터짐은 피할길이 없다. 끝나지 않은 것을 끝난 것으로 착각하는 일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착각은 그릇된 확신이다. 그릇된 확신, 곧 착각으로 그런 일이 있는가 하면 의지가 약하여 시작한 일을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그런 자를 향하여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리라’라는 말로 질타 하기도 한다.
모스크바로 향하던 프리고진의 거침없던 행진이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그는 그를 따르던 바그너 용병들을 뒤로한 채 벨라루스로 갔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치적 의미나 평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시작한 일을 끝내지 않은 것에 대한 최근의 실례를 들은 것 뿐이다. 제자의 길은 중도에서 그만 둘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눅 14:27-30) 기독교는 중도에 그만두어도 좋은 종교가 아니다. 우리 예수님의 위대한 선언이 있지 않은가. “다 이루었다” (요 19:30)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일을 중간에 그만두지 않아야 함을 누차 말씀하셨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죽도록 충성하라” 바울도 그런 부르심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우리도 그래야 한다. 우리가 중간에 머뭇거리면 우리의 뒤를 따라오는 후진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평생의 좌우명이 있으신가. 있으시다면 무엇이 그것인가. 백범 김구 선생님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은 조선 후기 이양연 시인의 한시는 이것이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잘못된 표지판이 난무하는 세상에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이 앞선 자가 사라지는 일도 없어야 한다. 우리가 바르게 그리고 끝까지 달려야 우리를 뒤따르는 후배들에게 확고한 이정표가 되리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정도면 훌륭하다’라는 마귀의 속삭임에, 또는 자신의 그릇된 확신에 넘어지지 말자. 우리의 생명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달려갈 레이스(race)도 남아 있다. 혹 쓰러져 있다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혹 잘못된 길이라면 돌이키면 된다. 역할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명의 무대 위에서 계속 어슬렁거리며 방황한다면 사명을 부여하신 하나님은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으며 마귀는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07.01.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