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리비아 사막의 대수로 건설. 세계 8대 불가사의(不可思議) 라고도 불렸던 대공사 이야기는 가끔 듣기만 해도 한국인의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차곤 했다. 그 일에 앞장섰던 사람은 동아그룹의 최원석 회장이었다. 그는 올해 80세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힘든 나날을 지내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지금 위세 등등한 재벌 회장이 아니다. 기업을 다 잃어버리고 회한(悔恨)을 품고 사는 평범하다 못해 그저 초라한 노인일 뿐이다. 스스로의 잘못인지 권력자에게 밉보여서인지 알 수는 없어도 지금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동아그룹뿐 아니라 하루아침에 사라졌던 다른 여러 기업들을 생각하면 제 3자요 멀리 있는 나도 지금까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들이 어려울 때 누군가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었다면 그 기업도, 대한민국도, 무엇보다 그 권력자의 역량도 커지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想像)을 해보았다. 세우기는 힘들어도 허물기는 쉬운데 짧은 힘을 가진 권력자들이 자기 입맛에 따라 오래 일군 기업들을 쉽게 주저앉히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떠나는 일은 정말이지 없어야 한다.
늘그막한 최원석 회장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을 본다면 그의 다소 어눌하고 짧은 말에 많은 사연과 사건들이 묻혀 있음을 누구라도 알 수 있으리라. 그의 인터뷰 가운데 이런 표현이 있었다. ‘내편은 아버지 밖에 없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대적했겠는가. 더욱 마음이 아팠을 것은 그의 측근마저 등을 돌릴 때였으리라. 그의 전 삶을 관통하는 것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세상에서 극심한 환난을 당할 때에 이 세상에 없으셨다. 아무리 아버지가 자기편이었다고 백번이나 확신하여 말한다 해도 그 아버지가 물려주신 것을 온갖 어려움 속에서 실제로 잘 지켜내야 할 것은 오롯이 자기 몫이었다. 결국 그 싸움에서 아들은 졌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문제에서 아버지는 아무런 도움을 그 아들에게 주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현실을 넘어선 고백, ‘내편은 아버지 밖에 없구나.’라는 고백만으로도 모든 현실의 아픔을 넉넉히 견딜 수 있는 것 같았다.
“왼 발, 오른 발, 왼 발, 오른 발” 구령소리가 울려퍼지는 훈련소의 제식 훈련 가운데 자기 아들도 있어 참관한 아버지가 있었다. 모든 훈련병들이 다 왼발을 내밀 때 자기 아들은 오른 발을 내미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훈련병이 오른 발을 내밀 때 자기 아들은 왼발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본 아버지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다른 훈련병들을 향해 혀까지 찼다. "내 아들 혼자 맞고, 다른 녀석들은 모두 틀렸네, 쯪쯪" 그렇다. 아무리 자식이 틀려도 아버지만은 그 자식 편이고, 그 자식이 예뻐 보이고, 그 자식의 모든 것을 품는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끊어질 그 날이 있다. 온 세상이 나를 버리는 날이 반드시 온다. 그 때 누가 끝까지 남아 내편이 되어 줄 것인가. 하나님 아버지는 끝까지 내 편이시다. 그러면 되지 않겠는가. 농구할 때 마이클 조던과 한편이 되는 사람을 누가 이기겠는가. 축구할 때 메시와 한편이 되는 사람을 누가 꺾겠는가. 살아갈 때 살아계신 하나님과 한 편이 되는 사람을 누가 무릎 꿇리겠는가. 그러니 하나님과 한 편이 되어 사는 사람은 무슨 일을 만나도 서러워 말아야 한다. 놀라지 말아야 한다. 당당히 이렇게 말하면서 승리를 확신해야 한다. “내편은 아버지 밖에 없구나.”
06.10.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