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지난 6일 토요일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이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됐다. 이 대관식에는 왕실 가족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유명인들이 참석하였고 런던 현지에 그리고 TV나 각종 인터넷 매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과연 행복할까? 그날 행사 중에 찰스 3세가 ‘지겹다’고 말했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왕실가정이 매우 일그러져 있음을 본다. 왕 자신이 불륜(不倫)으로 인한 이혼과 재혼의 과정을 거쳤고 둘째 아들 해리 왕자는 이미 가족과 왕실을 떠났고 그날도 다른 가족과는 달리 평상복을 입고 참여하였다가 서둘러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가 쓴 ‘스페어’는 자신과 왕실의 추문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쏟아낸 책이다. 그러니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한 대관식을 갖은 특별한 가정이라 하여도 ‘과연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살펴보면 딱하고 우스꽝스러울 수가 있었다.
같은 날 텍사스에서 들려온 소식은 참담했다. 텍사스주 댈러스 교외 대형 쇼핑몰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 가운데 한인 부부와 3살 난 아들이 있었고 5살 난 아들은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변호사와 치과의사인 이들 부부는 주위에서 신망을 두텁게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순간에 이토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가정이 허물어졌다. 소식을 접한 모든 이들의 마음도 허물어졌다. 떠난 이들은 물론이요 총격(銃擊)과 충격(衝擊)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생각할 때 슬픔을 금할 수 없다. 그러면서 동시에 질문을 던져본다. 백주(白晝)의 대낮에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니 도대체 이 세상에 ‘안전한 가정’이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라는 탄식어린 질문이다.
가정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일 눈을 뜨면 수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넘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영국 왕실처럼 가족 구성원 그 자신이 그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고, 텍사스에서 일어난 일처럼 밖으로부터 예고 없이 다가오는 어려움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야곱도 스스로 가정의 위기를 자초한 자이다. 자기의 집에서도 그랬고 외삼촌 집에서도 그랬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갔다. 언약을 기억하고 예배의 자리로 나갔다. 욥의 가정도 하루아침에 풍비박산(風飛雹散) 되었다. 욥은 예배의 자리로 나갔고 말씀을 붙잡았다. 가장이 분란(紛亂)했던 한나는 또 어땠는가. 모두 기본으로 돌아갔다. 기본으로 돌아가니 위기가 위험이 아닌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남편은 남편의 위치로 다시 돌아가고 아내는 아내의 자리를 다시 지켜야 한다. 부모도 그렇고 자녀도 마찬가지이다. 에베소서에는 “아내들이여, 남편들아, 자녀들아, 아비들아”라고 가족의 구성원을 각각 부르는 부름이 있다. 가족 구성원은 각기 고유한 자리와 그 자리에서 마땅히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가족 안에 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리를 이탈하고자 시도하면 가정에 균열이 시작된다. 우리 가족을 다른 가족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가정에 상처가 깃든다. ‘그만 둘 수 있으면 사랑이 아니다. 그만 둘 수 없으니 사랑이다’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거짓에 휘둘리지 말자. ‘사랑하는 자녀야, 너는 하나님이 멋지게 만드셨고, 너는 너가 될 때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야지 ‘넌 옆집 애 좀 닮아봐라’는 망언(妄言)은 더 이상 하지 말자.
05.13.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