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얼마 전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원로목사님이셨던 고(故) 장영춘 목사님의 3주기가 있었다. 목사님을 생각하는 가운데 목사님의 남겨진 노트에서 ‘힘주지 말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다. 어느 때인가 교인들에게 강의하신 내용이었다. ‘목에 힘주지 말라, 말에 힘주지 말라, 눈에 힘주지 말라’는 세 구절이 쓰여 있었다. 짧고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 힘주는 것은 바리새인 같은 특정한 이들의 점유물이 아니다. 우리도 순식간에 힘을 준다. 오랜 교인이라도 쉽사리 교만에 빠진다. 그러니 다윗이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도 외친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시편 31:23)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니 목에, 말에, 눈에 힘준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간파하신 목사님께서 교인들에게 ‘힘 빼세요’라고 강조 또 강조하신 것이리라.
이런 글을 읽었다. 주전 4세기 그리스에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하루는 디오게네스가 어느 부잣집으로 초청받았다. 초청의 이유는 곧 드러났다. 부자가 디오게네스에게 자신의 으리으리한 집을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부자는 집 자랑하면서 목에, 말에, 눈에 점점 그리고 마침내 잔뜩 힘이 들어갔다(필자의 표현). 그런데 갑자기 디오게네스가 부자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디오게네스는 너무나 당황해하는 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집은 너무 깨끗하고 아름답군요. 그래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가 침을 뱉을 만한 곳이 없더군요. 단지 교만으로 가득한 당신의 얼굴이 내게는 쓰레기통처럼 보이더군요.’ 이 무슨 망신인가. 그렇다. 목에, 눈에, 말에 힘이 들어간 사람은 멋져 보이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처량해 보인다.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 가르치고 먹여야 하겠기에 온갖 풍상(風霜)을 겪어가면서도 주어진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이들이 아빠이다. 아빠의 일터에서 무슨 일이든 안 일어나겠는가. 어느 날 힘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온 아빠를 바라보며 부른 어린이들의 노래가 있었다. ‘딩동댕 초인종 소리에 얼른 문을 열었더니/ 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 문 앞에 서 계셨죠/ 너무나 반가워 웃으며 아빠하고 불렀는데/ 어쩐지 오늘 아빠의 얼굴이 우울해 보이네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무슨 걱정 있나요/ 마음대로 안 되는 일, 오늘 있었나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힘내세요. 아빠’ 우리의 목회 현장, 삶의 현장에도 수많은 일이 일어난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날이 있다. 마음이 더 아픈 것은 그런 날에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무심하게 지나치던가 오히려 그들로부터 어이없는 핀잔이나 원망을 듣는다. 그런 세상으로 살아가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곧 다시 오시니까 그럭저럭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날이 가까울수록 우리에겐 격려가 더 필요하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4-25) 이 세상 사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힘내세요’라는 격려가 필요하다. 우리가 함께한다는 응원이 필요하다. 다시 용기를 내어 일어서게 하는 힘, 칭찬이 절실히 필요하다.
빼야 할 힘이 있고, 내야 할 힘이 있다. 서로 바뀌지 않게 하자. 이 둘을 분명히 하면 겸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 있다.
04.22.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