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행진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여기저기에 행진이 있다. 최근에 어떤 행진을 보셨는가?. 최근에도 보았고 또 자주 보는 것은 결혼 행진이다. 젊은이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결혼 행진들을 한다. 기쁜 일이다. 젊은이들의 정반대 행진도 있다. 마약과 도박으로의 행진, 극단적 선택을 향한 절망의 행진도 그 기세가 만만치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3월의 영어 이름은 ‘March’ 이다. 행진이란 뜻이다. 행진이라는 3월이 다 가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가슴 설레이며 맞이한 나의 3월은 무엇을 향한 행진이었는지. 

 

역사적으로 유명한 행진이 있었다. 60년 전 8월,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이끌었던 자유를 향한 워싱턴 행진이었다. 그곳에서 ‘I have a dream’이 외쳐졌다. 3월을 맞으면서 한국의 시인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박금숙 시인은 3월은 포근함이라고 했다. ‘가을에 떠난 사람 다시 돌아와 추웠던 이야기 녹이며 씨앗 한줌 나누는 포근함이다’/ 박승봉 시인은 3월을 희망이라고 했다. ‘상큼한 미나리의 향기로부터 3월은 시작한다. 온몸을 적셔 흐르는 시냇물 소리로부터 삶을 피우려는 부푼 희망이 온다’/ 오세영 시인은 3월은 함성이라고 했다. ‘만발한 진달래의 꽃 숲에 귀 기울이면 3월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 이해인 시인은 3월은 은총이라고 했다. ‘아직은 빈손 쳐들고 있는 3월의 나무들을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경건한 기도를 바치며 내가 나를 타이르고 싶습니다. 죄도 없이 십자나무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을 기억하며 가슴 한켠에 슬픔의 가시가 박히는 계절 너무 죄가 많아 부끄러운 나를 매운바람 속에 맡기고 모든 것을향해 화해와 용서를 청하고 싶은 은총의 사순절입니다’ 싸늘함 대신 포근함, 절망 대신 희망, 침묵 대신 함성, 그리고 책망 대신 은총. 이토록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주제들을 향해 시인들은 행진하였다. 

 

구속사적으로 필요했던 행진이 있었다. 이천여 년 전, 사랑을 향한 예수님의 행진이셨다. 사랑의 십자가를 향한 걸음이 이 3월에 있으셨다. 십자가를 향한 하루하루가 힘드셨을 터인데 그 길을 가시면서 쓰러진 자들을 둘러보셨다. 아픈 자들을 살펴보셨다. 그리고 3월에도 여전히 고쳐 주셨다. 여전히 품어 주셨다. 여전히 용서하셨다. 그런 3월을 지나며 마침내 만나신 십자가. 얼마나 아프셨을까. 못 박히신 손도 발도. 머리의 가시관도 얼마나 참기 힘드셨을까? 군중들의 조롱도 견디시기 힘드셨을 터인데 십자가 앞에서 줄행랑을 놓은 제자들의 배반에 마음도 얼마나 아프셨을까? 찬란한 해도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는지 눈을 감아 온 땅에 어두움이 깃들었다.

 

나는 이 3월에 보고 있다. 예수님의 사랑 행진에 동참하는 사순절의 사람들을. 아직 엄마 품에 안긴 갓난 아기들도 있다. 단잠을 깨우고 나온 많은 아이들도 있다. 그 자체가 기적과 같다. 청년들도 그 행진 가운데 뚜렷한 무리를 이루며 결연히 걷고 있다. 장년은 물론 노년의 어른들도 그 행진에 가득하다. 한국 이민자뿐 아니다. 다양한 민족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예수님을 따라 사랑의 행진을 하고 있다. 그 행진 속에 포근함이 넘친다. 그 행진 속에 희망이 가득하다. 그 행진 속에 함성이 높다. 그 행진 속에 은총이 둘려있다. 그 행진 속에 너와 내가 따로 없다. 세대 간의 갈등도 없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있을 뿐이다. 그 행진이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되리라. 

03.25.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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