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생각이 납니다

김재열 목사 (뉴욕 센트럴교회)
김재열 목사

미주한인예수장로회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담임

세상에 태어나 유아원에서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을 때 만나는 교사, 스승의 숫자가 얼마일까? 궁금해서 AI에게 물어봤더니 대략 100명 정도로 추산한다고 한다. 오늘의 나는 이런 수많은 스승을 통해서 내가 만들어졌을 것을 알며 계속 그분들의 가르침과 본을 따라 살아왔을 것을 생각하니 새삼 감사하고 존경하게 된다. 오늘따라 그 많은 스승 가운데 두 분 생각이 간절하게 되어 강렬하게 일어난다. 중학교 첫 담임이셨던 이성엽 선생님과 신학을 가르쳐 주신 박윤선 목사님 생각이 간절하다. 오늘은 이성엽 선생님 이야기만 나누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2학기에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하는 바람에 전학 수속을 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지인이 소개해준 중학교를 찾아 나섰다. 정문의 수위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교무실을 찾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악취가 진동하는 남학생들 화장실에서 맨손으로 누런 이끼를 제거하고 있는 수위 아저씨를 만났다. 그의 안내를 받아서 교무실로 갔고, 수속을 마친 후에 학급을 배정받았고 오후 수업까지 마쳤다. 이제 집에 가기 전에 종례 시간에 담임선생님을 처음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떤 분이 나의 새로운 담임일까? 궁금하게 기다렸는데 눈앞에 나타난 담임선생님은 오전에 화장실에서 청소하고 있던 수위 아저씨가 나타났다. 

난 순간적으로 신선한 충격에 정신이 하얗게 멈춰 버리고 말았다. 군복을 염색한 후줄근한 작업복 차림과 꾹 눌러쓴 운동모자와 낡은 군화를 신고 나타난 그분은 여전히 내 눈에는 수위 아저씨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진실의 품격이 담겨 있었다. 다음 월요일 애국 조회시간에 두발 검사가 있으니 반드시 머리를 다 깎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4.19혁명 이후에 중고생들에게 3㎝까지 머리카락을 기를 수 있도록 자유화를 했었다. 그러나 짓궂은 학생들은 3센티로 만족하지 않았다. 많은 학생은 장발족 비슷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1년 후에 군사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고 온 나라 질서와 기강을 군대식으로 바로잡기 시작하면서 다시 삭발령이 내렸다. 

그리고 애국 조회시간이 왔다.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하던 훈육 주임이 교단에 서서 이제부터 두 발 검사를 실시한다! 외치는 그 즉시로 각반 담임 교사들의 손에는 이발기기가 들려졌다. 그리고 앞줄의 학생들 정수리를 밀어서 고속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순간적으로 전교생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이리저리 도망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임시 조회로 전교생이 다시 운동장에 모였다. 이번엔 훈육 주임이 아닌 우리 반 이성엽 선생님이 교단에 올라섰다. 그리고 꾹 눌러쓰고 있던 당신의 운동모자를 전교생 앞에서 벗었다. 그 순간 전교생들은 어느 누구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부동자세로 얼어붙었다. 선생님은 친히 당신의 머리카락을 완전히 삭발한 모습으로 서 계셨다. 그리고 각반 담임선생님들은 기기를 가지고 학생들의 정수리 머리카락을 밀기 시작했다. 입으로 가르치지 않고 몸으로 가르치신 존경스러운 스승을 그날 처음 모시게 되었고… 일생 그 분은 나의 진정한 스승이 되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 번도 그분에게 접근해 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평생 스승으로 내 안에 자리 잡고 계신다.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버스를 타지 않고 출퇴근을 a, 한 번도 신사복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선생님의 전공과목은 생물학이었지만 진짜 전공은 삶의 본을 보이신 것이다. 후에는 모 대학의 교수로 섬기시다가 은퇴하셨다는 후문을 들어봤지만 여태 생존해 계시는지도 궁금하다. 다음 기회에는 친히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오늘따라 강하게 일어난다.

 jykim47@gmail.com

 

10.0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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