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예수장로회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담임
필자 나이 스무 살 무렵이었다. 연말 때 목사님의 설교 주제가 솔로몬의 일천번제였다. 설교를 마치고 기도하는 시간에 난 믿음으로 서원기도를 드렸다. ‘주여! 나도 새해에는 예배당에 나와서 일천번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감동의 마음으로 일천번 기도를 드리겠다고 서원은 했지만 곧 밀려온 걱정으로 매우 당황했다. ‘아니? 어떻게 일년에 일천번을 기도할 수 있겠니? 그것도 예배당에 나와서…’ 너무 경솔한 기도를 드린 것 아닌가? 그런데 내 안에서 자문자답이 이어지기 시작됐다. ‘너 새벽기도 시작하면 되잖아! ‘그래봐야 365번인걸… 그럼 오후에 집에 가는 시간에 한 번 더 가면 되잖아? 응… 그래도 730번 밖에 안 되는데…? 정기예배와 집회만 계속 나가면 될 걸~~’ 그래서 따져 보았다. 주일 오전 오후 104번, 수요일 52번, 금요일 청년회 52번, 토요일 찬양대 연습하러 52번… 다 합치니 990번이었다. 모자라는 10번은 덤으로 추가하면 되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새해가 밝았다. 일천번의 기도는 그렇게 시작이 됐다. 신년원단은 새벽을 깨우는 자들로 교회당이 가득했다. 한두 달이 지나면서 새벽기도회 출석이 점점 줄어들었다. 나른한 봄철이 되었을 때에는 원래 새벽기도가 체질화된 소수의 고정 멤버들만 남았다. 한창 잠이 많은 나이에 새벽 4시에 깨는 일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과 같았다. 그래도 서원을 했으니… 졸더라도 아버지 집에 가서 졸자는 마음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나가곤 했다. 어떤 날은 잠간 졸고 눈을 떠보면 텅 빈 예배당엔 나만 홀로 남겨 있었을 때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힘차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보면서 ‘시온에 영광이 빛나는 아침’을 부르는 발걸음에 감사와 찬양이 솟구치곤 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오후에는 어김없이 예배당에 갔었다. 그 때에 서울 수유리 성결교회에 출석을 했는데 예배당 건축공사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맑은 날에는 언제나 공사 중에 날아온 뽀얀 먼지들이 긴 의자 위에 가득했었다. 걸레를 들고 닦아야만 했다. 그 의자들을 닦으면서 우연한 법칙을 찾아냈다. 이름표는 없었지만 모든 교인들이 자기 지정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자리를 닦을 때에는 그 자리 주인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기도하곤 했다. 세 번째 줄 빈 의자를 닦을 때 홀로 사시는 권사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권사님은 신혼 시절에 남편을 전쟁에서 잃어버리고 유복자 아들과 살고 있었다. 그 아들은 믿음이 없었다. 주야로 그 어머니는 아들의 구원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다. 간절한 기도와 눈물로 얼룩진 그 어머니의 자리를 닦을 때 나도 몰래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떨어졌다. 여러 달이 지난 어느 주일 예배 때였다. 앞을 바라보는데 그 권사님의 옆 자리에 아들이 함께 앉아 있었다. 할렐루야! 순간적으로 내 안에서 솟는 그 기쁨! 그 감격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때 떠오른 성경구절은 가나의 혼인집에서 물로 최상품의 포도주를 만들어 온 결혼식장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궁금해 할 때에 오로지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였다. 여름날 장마철 오후에 빈 예배당에 갔을 때였다. 공사 중인 본당에 발목에 차는 빗물이 가득히 고여 있었다. 바지를 걷고서 맨발로 물들을 퍼내기 시작했다. 한 통 한 통 물을 퍼낼 때마다 ‘오! 주님, 하나님의 예배당에 물 푸는 특권을 독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솔로몬의 일천번제 일천번의 서원기도는 점점 그 횟수를 채워가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12월의 성탄계절을 감격가운데 보내면서 송년에 맞춰 일천번의 기도가 채워졌을 때를 나는 영영 잊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튼튼한 날개로 무한한 창공을 높이 높이 오르는 독수리가 된 기분이었다.
일년 동안에 일천번의 예배당 기도는 게으르고 나약했던 나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버렸다. 마치 깊이 묻혀 존재를 잊어버렸던 땅 속의 용암이 솟구쳐 화산을 폭발하듯이 일천 번의 기도는 내 안의 열등감과 무능함과 소극적이고 부정적이고, 부패한 자아의 두꺼운 불신앙의 암반들을 사정없이 터뜨려 버린 활화산이 되었다. 흘러내는 곳마다 흙이든지 나무든지 암반 같은 바윗돌도 녹여버린 용암처럼 일천 번의 기도는 나를 송두리째 태워버렸다.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고속 열차처럼 서울과 한국을 떠나 캐나다 토론토로, 미국 뉴욕으로… 천성을 향하여 일천번의 기도 약속은 오늘도 54번째의 역을 통과하며 끝없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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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4.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