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예수장로회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담임
성경을 영어로 바이블이라고 한다. 이 바이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까지는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초기에 성경 말씀을 돌판, 흙 판에다 기록했다. 그 후에는 양가죽을 가공해서 기록했으나 값이 비싸고 부피가 커서 불편을 느꼈다. 그 후에 나일강 연안에 서식하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을 채집해서 초록색 껍질을 제거하고 하얀 속살들을 가로 세로로 얽혀 놓은 후에 무거운 압력을 가해서 건조한 판지를 생산했는데 영어의 Paper(종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연유했다고 한다. 당시에 이 종이의 원료인 파피루스의 무역 집산지의 항구 이름인 비블로스 이름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성경 보급은 1445년경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였다. 단순하게 금속 활자와 인쇄술을 발명했지만 이것을 쉽게 사용하기 까지는 또한 상당한 시일이 걸려야 했다. 금속 활판에 묻혀 사용할 때 번지지 않는 잉크와 찢어지지 않는 종이를 동시에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 두 가지를 준비하고 선명한 글씨를 찍도록 적당한 압력(press)을 가하는 기술과 도구를 만들어 내는데도 또한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날 언론과 신문을 Press라고 부르는 연유도 여기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이런 조건들과 기술이 집약된 후에도 3년간에 걸쳐서 여러 시행착오 끝에 최고의 걸작인 1282쪽의 42행 성경, 일명 구텐베르크 성경이 1450년에 만들어졌다. 당시에 이 책의 값은 소 200마리 값에 해당하는 큰 저택 한 채의 값이었기에 보급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구텐베르크는 180여 권의 성경을 출판했지만 재정적으로 적자를 입고 인쇄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고 그 후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시력을 잃고 지병을 앓는 가운데 생을 마쳤다고 한다. 오늘날 그의 성경은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2질의 완판 성경이 대영제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책을 값으로 환산한다면 3500만 파운드 이상의 초고액의 보물로 여김을 받고 있다.
그 날 이후에 1470년에는 인쇄소가 주요 도시에 12곳이 생겼고, 1500년이 되어서는 유럽 일대에 240곳의 인쇄소가 급증했다고 한다. 때를 맞춰 마틴 루터가 독일어 성경 번역을 해서 대량의 성경이 출판되었지만 여전히 보급은 미미했다고 한다. 성경 보급이 잘되지 않는 주요 원인은 높은 문맹률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자기 이름만 쓸 줄 알아도 상당한 대우를 받던 시절이었다고 하니 가히 시대상을 알 것 같다.
성경은 이런 오랜 시련들과 각양의 어려운 과정들을 거쳐서 세계적인 영원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지난 100년 간 매년 2백만 권이 팔렸고 2,80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구소련 공산권에서는 성경 한 권을 갖기 위해서 30년을 기도했다는 성도가 있었다고 했다.
파란만장했던 초창기의 성경에 비해볼 때 오늘날은 성경의 홍수라고 할 만큼 각양 각층의 성경들이 출판되었다. 한글성경만 해도 약 20여 종류의 성경이 출판돼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성경만도 10종이 넘는다. 참으로 바람직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출판량에 비해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많지 못해서 심히 유감이다. 세대가 더 늙어가기 전에 어린 자녀들로부터 시작해서 성경 읽기 운동을 힘써야 할 것이다.
국제성경공회의 조사에 따르면 모든 기독교인의 83%의 신자들이 4세-14세 사이에 처음 복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나 리서치 그룹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5세-13세 미국 어린이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확률이 32%이지만 틴에이저가 되면 14%로 현저하게 낮아진다고 한다. 더욱이 19세 이상의 성인이 기독교인이 될 확률이 6%에 불과하다고 하니… 미국의 모든 교회들이 매년 열리는 여름성경학교(VBS)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 VBS를 통해서 미주의 모든 교회들이 복음의 문을 활짝 열고 동네의 아이들의 입에서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재미있게 듣던 말…’ 신명나는 찬송을 평생 저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부모들 역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나의 사랑하는 책…’을 평생 부르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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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7.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