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예수장로회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담임
주일 예배가 끝난 후 태권도 국제심판인 여 집사님이 인사를 하러 목사 방으로 왔다. 한국으로 역이민을 작정하고 이제 떠난다는 것이다. 이 부부들은 모두가 태권도 사범들이다. 뉴욕에서 태권도 보급의 꿈을 안고 왔지만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자녀들 양육도 쉽지 않았다. 교우의 전도를 받고 세례도 받았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우선 생업에 쫓기면서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냈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어려운 삶에 지칠 대로 지쳤고 교회가 서너 번 재정적인 후원도 했던 가정이다. 도저히 앞이 보이질 않아서 역이민을 결정한 것인데… 딱히 한국에도 정해진 계획은 없지만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심산이었다. 참으로 딱하고 어려운 가정과 미래를 보면서 목사는 인생 삶의 우선순위를 조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마륙삼삼(마6:33)”의 원리를 붙들고 살았던 한국 축구 국가대표선수였던 이영무 선수의 간증을 들려주었다.
이영무 선수는 어려서부터 축구에 대한 꿈을 가졌고 열심히 훈련하고 기도한 끝에 드디어 20년 만에 한국 축구국가대표가 되었을 때였다. 태릉선수촌에 입소하여 고달픈 훈련 중에도 전도와 기도생활에 전력을 다했다. 그 무렵에 유명한 차범근 선수도 전도했었고 많은 선수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추운 겨울에도 옥상에 올라가서 깊은 밤중에도, 새벽에도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루는 기도하는 가운데 ‘내가 너를 축구 국가대표선수로 부르지 않았다. 너는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음성을 듣고 고민 끝에 쪽지 하나를 남기고 태릉선수촌을 몰래 빠져 나왔다. 그렇게도 대표선수가 되기를 열망했는데 스스로 그만두고 떠나는 자신의 눈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고 한다. 딱히 갈 곳도 없었고 오라는 곳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에게 혼줄이 나서 다시 쫓겨 올게 뻔했다. 그는 기도원으로 발걸음 옮겼고 주님의 특별한 인도가 있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선수촌에서는 갑자기 사라진 이 선수를 찾아오라는 감독과 대한 축구협회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결국은 타의에 의해서 다시 선수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몸은 국가대표였지만 그의 믿음은 하나님나라 대표선수가 되기를 열망했다.
드디어 말레시아 쿠아라룸플 경기장에서 골을 넣은 이영무 선수는 그라운드에 미끄러지면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감격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TV로 아시아 전역에 중계가 되었다. 이 때부터 시작된 기도 세레모니가 수많은 반응을 일으켰다. 그가 앞장선 복음 전도가 점점 확장되면서 오늘날 한국의 모든 운동선수들과 심지어는 예능인들 세계까지도 확산되는 일에 하나님께서 이영무 선수의 믿음을 쓰셨다.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 제일주의로 헌신할 때…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
이 선수는 키가 매우 작고 달리기도 가장 느린 선수였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경기에 임할 때 자기가 가는 곳에 공이 날아오는 것을 다반사로 체험했다고 한다. 결국은 보통 대표선수들의 수명이 길어야 5년 정도인데 이영무 선수는 9년 7개월의 최장수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여전히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나라 대표선수였다. 은퇴 후에는 신학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어 지금까지도 여전히 할렐루야축구단 단장으로 제 3세계에 복음의 전도자로 꾸준히 달리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집사님! 하나님께서 이미 남들이 갖지 못한 좋은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이제 그것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철저하게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세요.’ 목사는 그의 앞날을 축복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펑펑 눈물을 쏟으면서 기도했다. 그동안 짓눌렀던 무거운 모든 짐들을 다 내려놓고 울기 시작했다. 누구도 풀어주지 못했던 답답하고 아픈 마음을 주님께서 어루만져 주셨다. 기도가 끝나고 눈물을 닦은 그의 얼굴을 환하게 피워 있었다. ‘목사님! 꼭 그렇게 살겠습니다.’ 목사는 소망을 안고 돌아가는 미래의 하나님나라 국가대표선수를 바라며 그의 앞날을 계속 축복할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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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