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소고

허양희 사모

(텍사스 오스틴 주님의교회)

갑진년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월이다. 세월의 흐름이 쏜 화살처럼  잽싸다. 사역하다 보면 요일별로 심방 일정과 약속 시간을 잡기에 날짜보다는 요일 감각만 지닌 채 일주일을 또 한 달을 지내다 보니 사월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버렸다. 

 

사월이면 항상 생각나는 시가 있다. 아마도 눈치가 빠른 독자들은 눈치를 챘을 것이다. T.S.엘리엇의 연작시 황무지의 한 구절인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다. 그가 사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은 그만의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일반적으로 1차 세계 대전 이후 황폐한 유럽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모국 대한민국의 총선이 4월에 있다. 어릴 때 선거 시절이 되면 출마자들의 사진과 이력이 동네 벽에 군데군데 붙어있는 것을 보며 언젠가 나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어린아이의 눈에 참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삶의 이력이 쌓이며 분별력과 판단력도 단단해진 요즈음 눈에 비치는 정치는 어릴 때 꿈꾸던 막연한 이상과는 달리 씁쓸한 마음이 들곤 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한국의 정치체제는 다양한 국민들의 생각을 수렴하고 반영하기 위해 다당제를 표방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이것을 자신들의 실리와 정욕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겉으로는 나라 사랑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안으로는 여전히 명예와 권세를 걸머쥐려는 탐욕이 들끓고 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경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며 사람을 찾아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사람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아 등불을 들면 혹여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해서라고 말했다. 정말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들의 삶을 책임 있게 이끌어갈 정치인다운 정치인들이 그립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참 정치인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유권자들에게 있어서 모국의 정치가 좀 안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모국을 떠나온 지도 삼십여 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로만 멀어졌을 뿐 항상 고국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기도하며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은 더 강렬해지는 것 같다. 오히려 타국에 거하다 보니 민족적인 정제성이 더 뚜렷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 앞이다. 한국의 4월이 잔인한 달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yanghur@gmail.com

04.1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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