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허양희 사모

(텍사스 오스틴 주님의교회)

누구나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늘도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과 삶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의 무게에 눌려 일어날 힘이 없어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모든 인생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간직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급하게 한국을 나왔다. 친정어머님이 편찮으셔서 돌봐드리려고 오게 되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들어오던 어느 날 어머니께 “삶에서 가장 기뻤을 때가 언제였어요?”라고 질문을 드렸다. 어머니는 내가 결혼할 때였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씀하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가장 기뻤지만 가장 슬픈 날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고인이 되신 아버지와 함께 이날을 기뻐할 수 없었음이 그렇게도 눈물을 흘리게 했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삶의 이야기를 건네신다. 수줍게 웃으셨던 순진한 이십 대의 어머니와 꼭 결혼하고 싶었던 아버지는 불같은 열정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결국은 아내로 맞아들였다고 말이다. 

 

고인이 되신 아버지는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대학 입시 6일 전이었다. 새벽까지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새벽녘에 들었던 청천벽력 같은 너무도 충격적인 비보는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던 터라 아직 믿음이 뭔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 풋내기 성도였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던 기도 제목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응급실에 내 눈앞에 주검으로 누워계신 모습을 보게 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은 하나님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어 다시는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치르고 돌아온 날 꿈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할 수 없는 명확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 절대적인 평안 가운데 들리던 그 음성, “나는 살아있는 자다.” 이것은 삶의 허무감과 하나님의 실재에 혼란을 느끼며 괴로워하던 나를 강하게 붙들어주며 다시 삶에 희망을 회복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었다. 돌아보니 아버지 부재의 깊은 터널의 시간은 영적인 아버지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로부터 삼십여 년의 시간을 보내오며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때로는 웃게 했고 때로는 깊은 한숨을 쉬며 울게 했지만, 하나님 안에서 맞이하는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삶에 재해석을 하게 한다. 슬픔의 시간은 슬픔 자체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 안에서 다시 해석하며 교훈을 얻게 하신다. 그러고 보니 성도로서 살아가며 겪는 모든 상황은 그 속에 절대자의 통치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인다. 

 

“주님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이 큰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시편 16:11. 표준새번역).

yanghur@gmail.com

03.0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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