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트로포스

허양희 사모

(텍사스 오스틴 주님의교회)

헬라어로 인간이라는 말이 안트로포스이다. 이것은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의 정체성은 위를 바라볼 때 구현되는 것으로 곧 창조주를 바라볼 때 인간다움을 추구할 수 있고 누릴 수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C. S. 루이스는 악마들이 주고받는 편지 형식의 글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에서 “인간들이 원수(그리스도)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에는 참패를 면할 길이 없지만 다행히도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길이 많이 있지. 개중 간단한 방법은 원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 환자의 시선을 그 자신에게로 돌려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 악한 영들은 지속해서 성도의 시선을 그리스도에게서 돌려 다른 것을 향하도록 방해하여 진정한 인간다움을 누리고 추구하지 못하도록 훼방한다. 

우리의 삶의 평강을 깨는 훼방꾼은 우리의 약한 부분을 노리며 죄 된 본성에 굴복하도록 지속해서 공격한다. 오래전에 어떤 자매를 알게 되었다. 이 자매는 위가 아프다고 기도 요청을 하였다. 그 자매의 위장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데 뭔가 이상한 영적인 것을 감지하게 되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고 하자 자매는 갑자기 몸을 비틀고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반응을 하였다. 악영의 노출이었다. 알고 보니 자매는 사춘기 시절에 다른 양육자에 의해 양육을 받으며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었고 그것이 쓴 뿌리로 남아있던 자매였다. 그녀의 상한 심령은 악한 영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그 양육자에 대한 미운 마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악한 영에게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이렇듯 죄는 악한 영의 역사를 허용하는 틈이 된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화가 나더라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기 전에는 화를 풀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여러분을 공격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것이 됩니다”라고 권면한다 (에베소서 4:26-27, 쉬운 성경). 삶을 흔히 관계의 덩어리라고 한다. 그만큼 많은 관계 안에 실타래같이 엮여 있는 것이 삶이다. 그 관계는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도 있지만 아픔을 주는 만남도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픔을 주는 만남은 상한 심령을 낳게 된다. 이때 상한 심령을 바울의 권면대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부정적인 마음은 사탄의 공격을 허용하는 틈이 되고 어느새 우리의 마음은 악한 영의 이끌림에 휘둘린 생각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신앙생활을 하면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위대한 바울도 이에 대해 갈등하고 고뇌한 것을 로마서를 통해 볼 수 있다. “나는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로마서 7:18. 쉬운 성경). 그만큼 죄인된 본성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도 저절로 사그러지지 않고 여전히 꿈틀거리며 우리의 경건의 삶을 위협한다. 우리의 의지만으로 죄를 멀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바울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몸의 악한 일을 죽이라고 권면한다(롬 8:13).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안트로포스, 인간을 규정하는 이 단어의 의미가 새롭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났지만, 여전히 죄악의 본성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삶은 매 순간 모든 상황에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바라볼 때 죄의 횡포에서 우리 내면을 지킬 수 있고 악한 영의 공격을 차단할 수 있다.

yanghur@gmail.com

11.0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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