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한 번도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주인이든지 마귀가 주인이든지 하나를 택해야 하는 운명으로 태어나지 않았나...
예수님은 빌라델비아교회에 ‘내가 네 앞에 열린문을 두었으되'(계3:8)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으셨다. 그렇다. 우리는 열린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열린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하게 모를 때가 많은 것 같다. 아니 그 열린문이 여러 개라면 어떤 문이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문인지조차 분별할 수 없는 우리이지 않은가.
오래전 남편과 나도 이 열린문 앞에 여러 번 선 경험이 있다. 그래서 브라질에서 하와이로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또 다시 텍사스로 옮겨가면서 그 열린문을 따라 오느라 허덕이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럴 때마다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열린문인지 진통하며 심각하게 고민하며 열린문 하나하나를 통과했다. 그렇다 그 문이 다 옳은 문은 아니었다 해도 하나님이 여신 문이라는 확신 때문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그리고 앞으로 남은 생도 몇 번의 열린문을 통과하며 그 나라에까지 이를 런지... 모른다.
많은 사람이 선택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 그래서 야고보는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한다. 그 말은 어느 문으로 들어갈지 묻지 말고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하라는 뜻일 게다. 스스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어느 문이 진짜 열린 문인지 모르더라도 한 가지 확실히 아는 것은 우리가 그 분의 형상을 닮고 예수님의 인격을 품은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리라. 하나님은 준비된 자보다 순종하는 자를 더 원하시지 않을까
예수님을 닮은 위대한 사람은 여러 가지로 들 수 있겠지만 혼자 있을 때도 누가 지켜볼 때나 다름없이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 성공하여도 여전히 바닥으로 살 수 있는 사람, 늘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며 그 속에서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하지 않을까 그렇게 열린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곧 우리가 즐겨하던 우상들을 기꺼이 다 뒤로한 채 그 자리를 떠난다는 뜻이리라. 아브람이 편하고 익숙한 곳에 머물렀다면 결코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했을 거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쉬운 삶을 주겠다고 약속하진 않으셨지만 우리에게 쉬운 멍에를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쉬운 멍에는 예수님께 꼭 붙어있을 때 누리는 평안이리라. 즉 외적 환경이 쉬워지는 게 아니라 내적 삶이 쉬워지는 것일 게다. 다시 말해서 나의 문제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주신다는 뜻이리라.
늘 잣대로만 판단하고 생각했던 생각 너머의 무한한 삶과 열린 문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열린 문을 과감히 들어가 보며 새로운 미지의 삶에 발을 디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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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