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지만 사랑은 이론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다르다. 나는 정말 죽음으로 나를 살리신 그 주님의 눈동자를 보았는가?
에덴을 떠난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존재였다. 그래서 우리 내면에서 끊임없이 무가치한 마음과 두려움과 버림받은 마음, 상처 쓴 뿌리들로 범벅되어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일방적으로 우리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목숨을 내어 주시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좀 더 헌신해야지, 좀 더 순종해야지, 좀 더 거룩하게 살아야지 좀 더... 하면서 하나님 앞에 잘못 산 것에 마음 아파하며 회개하느라 몸부림친다. 그리고 그런 것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니까 너희는 그냥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9)고 오늘도 말씀하신다.
그렇다. 진짜 믿음은 그렇게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믿고 누리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주님은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마11:30)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신앙은 바로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우리의 헌신과 사역과 일과 삶의 모든 기초가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면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고 또 일이 잘될 때에도 교만하거나 우쭐대지 않을 수 있으리라.
이렇게 수많은 말씀들과 강의들이 난무한 시대에 살면서도 어쩌면 우린 옛 조상들의 신앙을 따라 갈수 없는 것은 그 진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 그들은 읽을 성경 하나 없이도 전해들은 한 말씀 붙잡고 순교의 현장까지 갈수 있었을까!
욥은 긴 고난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는 고백을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 것이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이렇게 말한다. ‘내가 형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뵈온 것 같다’(창33:10)고...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 자는 어떤 고난을 만나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원수 같았던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만나는 것이리라.
그렇다. 편안한 가운데서는 어쩌면 우린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잘 깨닫지 못한다. 고난의 용광로에 들어가야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절절히 안다. 그동안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살아왔는가를....
아들을 내어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명으로 만난 사람은 그 감격과 감사로 오늘 하루도 넉넉히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이렇게 내 고갈된 사랑의 에너지가 하나님의 사랑에 접속되어 하루하루의 삶이 노래와 감사가 흘러나오는 느낌표 있는 삶이되길 바란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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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