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남편과 둘이만 휴가를 다녀왔다. 이 나이에 둘이 가서 뭔 재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여행은 낯선 삶 가운데 불편함을 겪으며 그냥 지나쳤던 일상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다시 찾는 것이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그렇다. 딱히 하는 일이 없이도 늘 마음이 분주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삶의 여유와 무료함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그 바다 한가운데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해 보며 남은 나의 삶은 어떻게 살까를 계속 생각하다가 깨닫게 해주시는 한 단어가 있었다. ‘의의 열매’이다. 그래 남은 내 삶은 의의열매를 맺고 사는 거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사랑의 열매, 믿음의 열매, 지식의 열매…. 많은 열매를 맺으려 애쓰며 일생을 달려온 것 같다. 이젠 우리의 마지막 인생은 의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이 다른 걸까?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고후9:10). 이 말씀이 내 영을 깨운다. 그렇다 아마도 다른 열매들은 내가 애를 쓰고 맺으려고 노력했다면 의의 열매는 그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내 인생의 주인이신 그 분의 의 때문에 내가 누리는 열매이리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요일3:2). 그렇다. 하나님은 정말 불쌍하고 약하고 두려움이 많고 믿음이 없는 나를 재창조하셔서 지금은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런 나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니 더 이상 내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 내가 잘못 살았던 때에도 나를 변호해주시는 그 분이 계셨다. 우리는 우리가 가치 없다고 불의하다고 연약하고 믿음이 없다고 그토록 오랫동안 배워오는 바람에 거기에 몸과 마음이 세뇌된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의롭게 되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이 기도하고 성경을 더 많이 읽고 또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 수학공식처럼 우리 뇌에 박혀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다시 깨닫는 의는 회개하거나 더 많은 주의 일을 해서, 더 많이 간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본다. 의는 나의 눈물이 아니라 주님의 피눈물에 의해 얻어졌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 아셨던 것처럼 우리가 그분의 의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악을 두려워하지 않고 질병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4:4) 하신 말씀의 의미를 이제는 깨닫기 때문이리라.
모든 애벌레는 나비가 될 수 있는 인자를 가지고 있듯이 우리는 육체적인 삶을 넘어 무한한 영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날개가 있다. 우리 속에 복음의 씨앗을 심을 때, 그 씨앗이 자라나 매일 매일의 영의 성장과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의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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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