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May flower호를 타고 영국에서 출발해서 미국에 왔는가요? 아니면 네델란드에서 출발하였는지요? 그리고 청교도가 미국에 오게 된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 로미타 권영화
A: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영국의 헨리 8세는 개인적인 이유로 왕비인 캐서린과 이혼하려 했으나 교황 클레멘트 7세는 반대하였습니다. 그래도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이혼을 하게 되자 교황이 국왕을 교회에서 출교하였습니다. 이에 반발한 헨리 8세는 로마가톨릭 교회와 결별을 선포하고 잉글랜드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것이 Episcopal Church요 영국 성공회입니다. 이것은 국왕이 교회의 머리가 되는 독립교회로서 국교회는 반은 가톨릭적인 의식과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보다 더 철저하고 완전한 성경적 걔혁을 부르짖고 등장한 무리들이 바로 청교도들입니다. 그러나 헨리 8세는 자기의 교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성경학자요 개혁신앙을 가진 청교도 지도자인 윌리암 틴데일을 잡아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을 합니다.
그 후에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6세가 왕위를 계승하나 16세의 어린 나이에 죽게되자 에드워드와 캐서린 사이의 딸 메리가 왕으로 즉위합니다. 그녀는 다시 로마가톨릭으로 회귀를 시도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존 후퍼, 존 브레드포드, 토마스 크렌머등이 화형을 당하며 순교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거의 300명에 가까운 퓨리탄들이 프로테스탄트라는 이유로 화영장에서 불타서 순교했습니다. 그래서 메리 여왕을 사람들은 피의 메리라고 불렀습니다. 토마스 크렌머는 “나는 로마 교황을 거부합니다. 그는 적 그리스도이며 거짓교리를 가르치는 자입니다.” 라고 말하며 순교했습니다. 그래서 메리 여왕의 박해를 피해 800명의 개혁자들이 스위스, 독일 등지의 유럽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그러나 존 낙스(John Knox)를 비롯한 230여 명의 개혁자들은 프랑스로 제네바로 가서 칼빈의 도움으로 신앙고백서를 만듭니다.
그 후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처음에는 중용정책을 펴다가 나중에 역시 청교도들을 핍박하여 결국은 청교도들은 견디다 못해 화란으로 가게 됩니다. 청교도들은 2종류가 있는데 분리주의자와 비분리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분리주의자들은 영국 국교회는 비성경적인 요소가 너무 많으므로 그들과는 같이 예배를 드릴 수 없어 따로 나와서 교회를 세우고 예배드린 자들입니다. 그러나 비분리주의자들은 영국 국교회가 부패했어도 영국 국교회에 남아서 개혁해 나가자는 청교도들입니다. 분리주의자들이 엘리자베스 1세 때에 나라를 배신한 자라고 해서 핍박을 많이 받자 그들은 영국을 떠나 화란(네델란드)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10년간 살았으나 다시 화란을 떠나게 된 이유는 아이들 때문입니다. 1) 정체성: 자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영어를 다 잊어버리고 화란어를 쓰게 됩니다. 2) 화란 문화의 세속화: 청교도들의 자손들이 화란에서 세상 쾌락의 풍조에 물들어 세속화가 될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620년 화란의 네이덴(Neiden) 항구에서 102명이 미국 신대륙의 소문을 듣고 떠나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영국에서 떠났다고 말하는데 역사를 잘 공부 안 한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 플리머스에 도착하여 정착하게 됩니다.
12.16.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