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신앙 (82)

이윤석 목사

바)학문과 도덕의 문제에 대해서도 교회는 그것을 지적할 임무가 있다. 도덕의 영역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진다.

세상이 그리스도 안 믿지만 방종에 빠지도록 방관해선 안돼

교회는 최선 다해 원리들 영역 고수하고 국가가 인정하도록

 

사)법률적인 가르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점점 사람들의 뜻이 최고의 우월성을 차지하며, 대다수의 차원에서 의견을 종합하는 차원에서 결정되고 있다. 이런 개념이 가공스러운 성적 문란, 동성애 등에 대한 현대적 경향 전체의 뿌리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동성애적 행실에 대해 크게 무서워하고 혐오감까지 가졌었다. 그래서 동성애를 금지하고 그것을 범죄로 규정했던 법률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중의 여론이 바뀌어 사람들은 더 이상 그같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옛날과 같은 법을 강제적으로 부과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와 같은 경우에 도덕적인 기준들이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 시기마다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에 대해 교회는 이런 문제들을 성경으로 말할 것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다수의견식의 발상이 선악을 판별하는 자제가 거짓된 방식임을 지적하고 그것은 인간, 또는 세상을 위해서도 결코 좋지 않으며, 인간의 참된 본성과 인간의 가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발상임을 가르쳐야 한다. 대다수의 뜻이 이런 심오한 논점들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올바른 일이 아니다. 

교회는 여기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분명하게 그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종합된 여론이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근거가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성애나 이혼이나 낙태나 산아제한이나 다른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도덕적 결정의 기초가 그런 종합된 여론이 아니다. 대다수의 의견은 한 세대 속에서 바뀐다. 그러므로 그런 자세는 결코 옳을 수 없다. 과거에도 항상 그러했다. 공중여론처럼 믿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심오하게 논의되어야 할 문제들이 그런 기초에 근거하여 결정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런 것이 모순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물론 교회와 설교자는 균형을 지키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는 원리들의 영역을 고수해야 한다. 교회가 정치를 설교하는 경향으로 넘어가 버리거나 과거의 혼돈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나가는 글

 

우리 그리스도인의 임무는 명백하다. 교회의 개인 지체들은 이런 원리들을 삶의 모든 방면에서 구체화시키는 임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를 자신들의 개인생활 속에서만 국한시키거나 자기의 개인 경건이나 자신의 예배행위에만 제한시키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회는 전인격을 동원해야한다. 사람들이 복음을 믿는다면 그것이 그들의 사고방식 전체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이며, 새로운 마음을 가진 그들은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그런 점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 중의 중요한 한 가지는 할 수 있는 한 자기들이 속한 국가에 존재하는 권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애를 써야 하며, 그들이 바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한 개인은 이런 일을 할 의무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책임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마다 직업적인 소명과 종사하는 전문영역이 다르다. 그 각 영역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연합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 의사, 법률가, 건축가 실업인, 노동 운동가로서 어떻게 해야 우리 그리스도인의 이해와 인생관을 이 영역에 적용할까하는 문제에 대해 함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또한 다른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방편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개념은 비성경적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국회나 지역사회의 공직자로 진출하는 것에 적극적이 되어야 한다. 어떤 정당에 속해 있든지 간에 그리스도인의 입장, 그리스도인의 관점을 개진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만의 정당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의 동기와 목적에 대해 명백해야 한다. 우리의 관점이 탁월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합법적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통해서 위에 있는 권세들을 설득하여 문제들을 우리가 보는 성경적인 진리의 방식으로 보도록 애를 써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기능은 아니지만, 개개인 그리스도인들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의 추락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를 다루었던 윌버포스(Wilberforce)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적극적으로만 나아갈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기독교 국가를 결코 창출해내지 못하는 것 때문이다. 기독교 사회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주권이 실현되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주님으로 인정할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화에 대해 말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이런 원리들이 우리가 속한 국가가 실제로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의 기능은 주로 소극적이다. 국가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질서와 법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죄의 악한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다. 할 수 있다면 그 국가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보려고 애를 써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국가는 그 소극성 이상 결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반은총의 주요 목적임에 틀림없다. 일반은총도 하나님의 주되심과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강조한다. 세상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지만 세상이 하고 싶은 대로 방종에 빠지도록 방관해서는 안된다. 

이 세상은 여전히 우리 주님의 세상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도 않고 복종하지 않던 모든 사람들은 멸망당할 것이다. 그 후에 완전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그 나라에서 최고의 주로서 왕 노릇하시며 인생 전 영역에서 왕 노릇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자로서 지금 여기서 이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끝>

 

07.2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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