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국가와 교회라는 분명한 두 개의 다른 영역-신약의 증거
구약성경시대 사람들은 혈통에 의해 교회의 지체, 곧 이스라엘 족속의 한 지체가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난 그 이유 때문에 할례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전적으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다. 어떤 특별한 족속에 속한 결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육신적인 혈통의 결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 거듭남으로서만 그 나라에 들어간다. 우리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셨다.
요한복음 3장 3절과 5절에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한다. 그 나라 전체는 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영적인 나라는 그 나라의 직무자들을 통해서 다스려진다.
디모데전서 2장과 3장에서 그 대조를 발견할 수 있다. 디모데전서 2장에서 사도는 먼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데 그것이 국가이다. 그 다음 3장에서 교회 안에 있는 직분자들을 다룬다. 이 둘은 전적으로 다른 영역이다. 그 직분자들은 국가와 어떤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 사도는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다툰 문제를 사회법정으로 가지고 나간 것 때문에 책망한다. 그들이 문제 해결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을 찾아야 했다. 교회 안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자라도 그런 일들을 처리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겠느냐 그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고전6:1-5).
만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개인적인 논란거리를 가지고 사회 법정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면, 하물며 기도서나 교리 문제 같은 것들을 가지고 국가로 나아가는 것은 더욱더 삼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개념은 신약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그 정신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3-4절에서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을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라고 말씀한다.
그런 다음에 에베소서 2장에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라고 말씀한다.
그것이 바로 거듭난 사람들의 생활과 충돌을 일으키는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의 생활이다. 거듭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이 될 때에 국가의 영역과는 전혀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 말씀하면서 바울은 로마시민으로서 그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진정한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말함으로 바로 교회의 영역에서 그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가 이 세상의 한 나라에 소속하기는 하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시민권은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약성경 전체에서 항상 그어져 있는 분명한 구분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국가와 하나 되는 개념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또 교회와 국가가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아 하나가 된 사람들”이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13장, 17장, 18장에서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와 대조적으로 다른 편에 세상의 국가들이 있다.
13장에 “짐승”이라는 말과 “짐승의 형상”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런 말은 자기 권세를 영적인 세력인 교회에게 넘겨주는 세속권위를 가리킨다. 그래서 그 세속 권위를 받은 교회가 “짐승의 형용”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과 똑같은 종류의 권위를 행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교회의 경우에서 우리가 보아온 모습이다. 심지어 프로테스탄트 내에서도 교회 침체가 계속되는 때에 그런 모습이 드러났다.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에서도 이런 큰 대조가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7)신약성경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 국가교회
신약성경 전체 정신은 이 국가교회 개념을 전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신약에는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의 대조가 확실하게 나타난다. 신약의 진수는 거듭남이기에 신약성경의 인도함을 받고자 한다면 국가교회와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없다. 교회문제나 교리문제나 기도서를 세속정부로 가지고 나간다는 것은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지지하기 위한 장절로 구약성경만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불신자들은 신령한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그런 영역에 대해 전혀 무능한 자들이다. 이런 일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그러므로 국가교회나 기독교국가라는 여지가 신약성경에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통치자나 왕이나 임금이나 대통령이 그리스도인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남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지도자는 한 개인으로서의 그리스도인에 불과하지, 국가의 머리로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만일 그가 자기의 권세와 입장과 국가의 수장으로서의 특권을 사용하여 자신의 지위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기독교회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바꾸려고 한다면 그는 마태복음 20장 25-28절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나라에 있는 모든 것은 전적으로 국가에 있는 것과 다르다고 말씀하신다. 큰 자가 다른 자들을 섬기는 것이 세상 나라지만, 이 영적인 나라에서는 종이 되어야 큰 자가 되는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자기가 대통령이라는 것 때문에 기독교회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져야겠다고 요구한다면, 교회는 그 대통령에게 다른 사람과 똑같은 좌석에 앉으라고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회 밖에서 인정받는 모든 구분과 차별들은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인정해주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영역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교회와 국가 사이가 하나라는 전체 개념, 또한 그 둘 사이에 충성과 합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개념이 얼마나 신약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위반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younsuklee@hotmail.com
05.25.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