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신앙 (78)

교회와 국가

3)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위한 인용구절은 구약의 구절들

신앙고백에 있는 성경의 참고구절들은 이사야 49장 23절, 시편 122편 9절, 에스라 7장 23, 25-28절, 레위기 24장 16절, 신명기 143장 5-6, 12절, 열왕기하 18장 4절, 역대상 13장 1-9절, 열왕기상 23장 1-26절, 역대하 34장 33절, 25장 12-13절, 19장 8-11절이다. 

그리고 말씀의 교리와 말씀의 순결성을 보존하기 위해 행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될 의무에 관한 이 가르침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약성경을 오직 한번 인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마태복음 2장 4-5절이다. 그 말씀은 우리 주님의 탄생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2절에 동방박사들이 헤롯을 찾아가고, 3절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며, 4-5절에서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날 것인가 물을 때,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웨스트민스터 작성자들이 발견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이 시대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가지고 그 작성자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행정부 사람들과 국가가 기독교회의 일에 간섭하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오히려 두려운 일이며, 우리는 서로 불일치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말로 한다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자체가 신약성경에는 이 문제를 위한 기본적인 가르침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구약성경으로 나아가야 한다.

벨직 신앙고백(Belgic Confession)의 36항 대목도 구약성경에서만 참조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그 대목의 각주에 ‘이 조항은 다른 개혁주의 신앙고백들에서 같은 문제를 다루는 조항들과 같이 국가와 교회의 연합이론에 기초하여 작성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 주님과 사도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에 이르기 힘들다. 

그러면 우리가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콘스탄틴 황제와 로마제국으로 인해 도움을 입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로마 카톨릭교회나 영국 감독교회들의 예배 안에서 보듯이 의식들이나 예복들을 교회 예배 속에 끌어들이는 문제에서 그들은 구약성경을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다. 

 

4)구약의 국가개념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로 대치됨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경우, 동일한 한 사람이 국가의 성원도 되고 교회의 성원도 되었다. 사도행전 7장 38절에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스데반이 말하면서 이스라엘 나라를 ‘광야에 있었던 교회’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경우에서마저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교회의 직무자들과 국가의 직무자들 사이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백성은 동일하였지만 영역은 둘이었다. 구약성경 전체가 바로 그 점에서는 분명하다. 어떤 왕들은 제사장들에게만 허락된 역할들을 스스로 취하여 감당하였다가 무서운 방식으로 징벌을 받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매우 독특한 경우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한 백성을 불러내사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구약성경에서 보는 모든 것은 그때에만 적용되는 것이며 그것은 예비적인 것이다. 신약성경으로 나아갈 때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더 이상 그런 예비적인 것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마태복음 21장 43절에 주님께서는 친히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여기에 그 나라에 대한 주님의 분명한 선고가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서 빼앗아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에게 주리라”고 선고하신다. 신약성경 전체가 보여주는 그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회이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육체적 족속이 하나님의 족속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닌 것이다.

 

5)세상 나라(국가)와 하나님의 나라(국가)의 본질적인 차이

기독교회는 구약시대의 교회와 같이 더 이상 한 족속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어떤 특별한 혈통의 백성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족속이나 방언들을 가진 각 개인이 이 한 새로운 몸, 이 한 새로운 나라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약의 이야기이다. 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아졌고 그 나라들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교회를 어떤 국가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민족의 독특한 문화를 신약 안에 있는 기독교회에 바로 전이시키는 것은 성경에 억지를 가하는 태도로서 혼란을 일으키며, 성경 자체에 대해서도 무리한 억지라고 할 수 있다. 

구약성경을 그런 특별한 방식으로 신약에 바로 단순하게 전이할 수 없다. 구약시대의 국가는 그 나름대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구약의 경륜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실”(롬1:3) 메시야를 오시게 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메시야께서 오시는 순간에 새로운 원리가 작용되어 전 세계에 흩어진 모든 족속들 속에 있는 교회들을 이끌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그 완전한 구속의 사역을 마치신 이후에 구약성경에서 보이는 교회와 국가 사이의 연합관계는 중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20장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와서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그 동전을 내밀자 주님께서는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라고 물으시자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라고 대답했다. 이에 우리 주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가르치셨다. 이 두 가지는 다른 영역에 속한 것이다.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신다. “네가 왕이냐?”라고 질문을 받으셨을 때, 예수께서는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마태복음 20장 25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자신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신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신 교훈이 바로 이 본질적인 차이를 확증해준다. 주님의 나라는 더 이상 지상의 국가적인 개념과 같을 수 없다.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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