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의 결혼관(4)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2) 하나님 사랑과 같은 부부사랑의 표현 청교도들은 결합한 사랑이 매우 완전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 사실은 다니엘 로저스(Daniel Rogers)가 묘사한 것과 같은 구절들을 볼 때 명백하다.

“결혼의 사랑은 종종 아무런 알 수 있는 원인 없이 한 편의 마음을 다른 편에게 고정시키는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이다. 그러므로 이 강한 천연자석이 서로를 끌어당길 때 더 이상의 질문을 할 필요가 없이 단지 그 남자와 여자의 결혼이 천국에서 이루어졌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함께 하도록 하신 것이다(Daniel Rogers, Matrimonial Honor, 1642)." 현대적인 표현으로 하면 결혼은 사랑에 폭 빠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로저스는 이 마음을 고정시키는 일이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모든 청교도들이 행하고 있는 바와 같이 남편과 아내의 서로에 대한 확고한 애정은 모든 경우에 있어 하나님의 명령 사항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서로의 배우자가 될 사람은 지금 당장에 상대를 분명히 사랑하는 자이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 배우자의 눈에 그런 사람은 비록 발견된다 하더라도 생의 동반자로 적절한 후보자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는 불변의 기초에 근거하여 확고한 애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결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육체적인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사랑의 행동들은 이 애정을 무르익게 하고 깊게 할 것이며 따뜻한 부부간의 사랑에 이르게 할 것이다.

3) 구속(救贖)적인 사랑의 비유로서의 표현

뉴잉글랜드로 간 캠브리지의 청교도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는 자기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을 예증하고자 하여 자신의 설교에 이 따뜻한 부부간의 사랑을 묘사했다. 그는 주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의 증거로서 복음의 성례들을 제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아내를 묘사했다:

“아내가 먼 지방에 있는 남편의 편지들을 읽을 때, 그녀는 남편이 사랑하고 있다는 많은 달콤한 암시들을 발견한다. 그녀는 이 편지들을 매일 자주 읽을 것이다. 그녀는 그 편지들 속에서 멀리 떨어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남편을 볼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가 편지의 이 구절을 쓸 때 이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러면서 그녀는 남편이 자신에게 계속 말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녀는 남편이 지금 있지 않지만 필적 가운데 잠시라도 함께 있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에 그 편지들만을 읽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성찬식은 곧 주님의 사랑의 편지들인 것이다.”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는 이 설교에서 하나님의 소유인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돌보심을 강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남편을 묘사한다:

“그 마음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가 있는 남자는 밤에는 그녀의 꿈을 꾸고 잠이 깼을 때는 그의 눈과 생각에 그녀가 있고, 식탁에 앉을 때에도 그녀를 명상하고, 여행할 때에도 그녀와 동행하고, 그가 어느 곳에 가든지 그녀와 이야기 한다”(토마스 후커, “구속(救贖)의 적용”, 1659). 남편이 자신의 배우자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모든 생명 있는 피조물들보다 더욱 사랑할 때, 그 사실은 다음과 같은 존경의 표현들로 나타난다. 곧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그녀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완전히 그녀의 만족과 위로를 위해 사용된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있고 그의 마음은 그녀에게 맡겨 있어 그는 자신의 애정의 물결이 강한 해류와 같이 격렬하게 넘쳐흐른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토마스 후커, “그리스도의 마지막 기도에 대한 언급”, 1656).

4) 주님 사랑과 동등한 부부사랑의 표현

청교도들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우선 되어야 하고, 인간의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양육하고 빗나가게 하지 않을 동안에만 구현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분명히 그들은 부부간의 사랑이 열렬하고 강해야 한다고 기대했고 또한 그렇게 가르쳤다. 그들은 비록 자제는 하였으나 억제는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기 배우자에게도 풍성한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윌리암 구즈(William Gouge)는 다음과 같이 책망한다: “뜨거운 애정이나 애정의 마음이 없는 남편들의 성벽은 절대로 말씀에 의해 정당화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신실한 성도들은 전혀 애정이 없는 스토아 철학자가 아니며, 또한 그들은 아내가 즐거워하는 독특한 방식에 대해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내를 즐거워하는 것은 결혼 상황에 관련된 특권이기 때문이다”(윌리암 구즈, “가정의 의미에 대해”, 1634).

5) 부부의 성경적인 사랑 표현의 유익

에드먼드 몰간(Edmund Morgan)의 말과 같이 “청교도는 억지로 점잔을 빼는 자나 금욕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웃는 법을 알고 있었고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그들 부부애정에 대한 긍정적 현실주의는 그들이 결혼관계의 이해를 위해 성경을 찾았다는 사실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들은 결혼의 제정을 알기 위해 창세기를 찾았고 결혼의 완전한 의미를 알기 위해 에베소서를 찾았고, 결혼의 위생학을 알기 위해 레위기를 찾았고, 결혼의 관리를 위해 잠언을 찾았고, 결혼의 윤리를 알기 위해 몇몇 신약 성경을 찾았고, 이상의 예화들과 제시를 위해 에스더, 룻기, 아가서를 찾았다. 밀턴(Milton)은 그들의 성경 탐구의 결실을 엄숙하게 제시하는데 첫 번째로는 양성의 차이를 제시하고, 그 다음에는 결혼의 사랑의 찬양적 기원을 제시하고, 마지막으로는 그런 사랑이 가져올 수 있는 영적 유익을 선포한다.

8. 청교도 부부 생활의 모습

부부가 된 자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고린도전서 7장 4절의 “아내가 제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는 말씀은 부부의 평등성을 강조하고, 이에 기초하여 서로를 열심히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청교도 로버트 볼튼(Robert Bolton)은 “남편은 아내의 수고를 자신의 수고와 같이 보답하라”고 가르쳤다. 볼튼은 이어서 "영혼에게는 성이 없다. 아내의 영혼이 자신의 영혼인 것처럼 동등하고 자연스럽게 모든 선함을 나타내도록 하라. 다만 아내의 영혼이 연약한 육체에 의해 약해지고 무력해지는데, 주께서 그러한 약한 육체를 입히신 것은 지혜로운 섭리에 의한 것이니 하나님의 선을 위해 더 편리하고 편안한 도움이 되기 위함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감상적인 애정 표현을 개발해야 하며, 진정한 사랑을 명백히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히 이 모든 것 외에 인내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청교도 사상가들은 배우자의 간음이 있었을 때에 재혼의 권리를 수반하는 이혼이 성경적으로 허용되었다는데 대체로 동의하였다. 남녀가 동등한 권리로서 동일하게 실제적인 결혼 관계 파기의 모든 행위들은 ‘악의적인 유기’, ‘부부가 서로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조건들을 요구하는 것’, ‘학대’, ‘질병’, 그리고 ‘정신이상’이다. 그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는 "교회나 민사 재판에 의해 결코 교정될 수 없는 간음과 같은 고의적 유기를 제외한 무엇도 결혼의 결속을 해제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심지어 간음죄까지도 기꺼이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 것은 17세기의 서정에 충격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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