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의 결혼관(3)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5. 청교도 배우자의 인격

청교도들은 신앙에 기초한 결혼을 말하면서 동시에 신앙 인격문제도 언급했다. 신앙인격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그들은 현숙한 여인을 얻는 것이 하나님이 복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잠언 31장과 베드로전서 3장 1-7절을 즐겨 인용했다. 청교도들은 배우자의 인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쳤다: "바람직한 배우자에 대한 확신을 이루는 현명한 방법은 그들의 평판을 알아보고 그들이 사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옷을 입으며, 어떻게 대화하는지를 관찰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을 친구로 사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상대가 건강한지 병들었는지를 나타내는 맥박과 같은 것이다. 실제적인 평가를 위해 결혼하려는 남녀들은 먹고 걷고 일하고 놀고 대화하고 웃고 성내는 모습을 서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기대한 것 이하의 사람이나 이상의 사람과 결혼하게 될 수 있다. 부부는 특별히 나이나 사회적 지위, 재산, 지능이 비슷해야 하며, 결혼에 대한 부모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상호 간의 사랑과 봉사를 통해 영광 받으시기 위해 서로에게 서로를 주셨다는 확신 위에서 그들 사이의 애정의 결속이 자라가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토마스 테일러(Τhomas Taylor)가 말하듯이 ”모든 결혼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은혜를 끼쳐야 한다.”

6. 청교도 배우자의 공동의무

제임스 패커(James Packer)의 책 “청교도 사상”은 리차드 벡스터(Richard Baxter)가 배우자 서로의 공공 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인용하고 있다: “첫째, 완전히 서로 사랑하라. 그러므로 진실로 사랑스러운 상대를 택하라. 그리고 당신이 사랑을 소멸할만한 경향이 있는 모든 일들을 피하라. 둘째, 함께 거하며 서로 즐기라. 그리고 자녀의 교육과 가정을 다스림과 모든 일의 경영의 조력자로서 신실하게 협력하라. 셋째, 특별히 서로의 구원에 조력자가 되어라. 서로 믿음과 사랑과 순종과 선행을 분발시키라. 죄와 모든 유혹들에 대해 서로 경고하며 도우라. 가정 예배와 개인 예배에 협력하라. 죽음이 가까워 올 때에 서로 준비하고 영생의 소망 가운데 서로 위로하라. 넷째, 모든 분쟁을 피하고, 당신이 고칠 수 없는 서로의 약점들을 참으라. 다루기 힘든 정욕을 일으키지 말고 진정시키라. 그리고 적법한 일들에서 서로를 즐겁게 하라. 다섯째, 부부의 순결과 정절을 지키고, 질투를 일으킬 수 있는 상대에 대한 모든 부적당하고 무례한 몸가짐과 행동, 그리고 부당한 모든 질투를 피하라. 여섯째, 서로 자신의 짐을 지며 서로 돕되, 성급함으로 그 짐을 더 무겁게 하지 말라. 궁핍과 시련과 질병과 위험에서 서로 위로하고 부축하라. 그리고 모든 다른 외부의 위로들이 쓸모없게 될 때, 거룩한 사랑과 천국의 소망과 의무 가운데 즐거운 동반자가 되어라.” 이런 구체적인 덕목들은 마치 지금의 개혁교회 목사들의 다정하고 성경적인 주례사 이상, 결혼으로부터 천국의 소망에 이르기까지 배우자로서의 언행심사에 대한 구체성과 적용성이 있는 항목임을 볼 수 있다.

7. 청교도 배우자의 애정표현과 노력

현대 기독교인에게 부족한 부분을 알아보고자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본다. 리차드 백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이 땅에 결혼만한 위로의 근원은 없다. 당신이 완전하게 사랑하는 신실한 친구를 소유하는 것은 은총이다. 그녀에게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열고 당신의 일들을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의 영혼에 조력자가 되고 당신 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분발시키는 그토록 가까운 친구를 소유하는 것은 은총이다. 이런 내용은 부부간의 깊은 애정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우리가 더욱 풍성히 표현해야 하듯이 부부도 서로에게 풍요로운 애정을 표현해야 할 것을 지시한다. 이것은 감정적인 애정 표현도 개발해야 하며 진정한 사랑을 명백히 표현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청교도들의 이런 표현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딱딱하고 근엄한 그들의 삶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의 진보된 청년들의 생각처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애정표현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부부간에 즐거워해야 할 사랑의 표현 청교도 설교자들은 잠언 5장 18,19절을 즐겨 인용했다: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청교도들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우선되어야 하며, 인간의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양육하고 빗나가게 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구현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분명히 부부간의 사랑이 열렬하고 강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으며 그들은 애정표현에 있어서 자제하기는 했지만 억제하지는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청교도 존 밀턴(Johh Milton)은 그의 “실낙원”에서 다음과 같이 기원한다:

“축하한다! 부부애여! 신비한 법칙이여! 인간 번영의 참된 근원이여! 기타 만물에 공통된 것 중에서 낙원 같은 특유한 일이여! 그것 때문에 음욕은 인간에게서 쫓겨나 금수들 사이에서나 방황하게 되었고, 이성에 뿌리박은 충성되고 바르고 깨끗한 그 사랑 때문에 정다운 부부관계와 아버지, 아들, 형제의 모든 애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죄나 치욕이라 부르고 지성의 장소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것은 가정적인 즐거움의 무궁한 샘, 그 침상은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하다.... 사랑은 잘못된 생각을 정화하고 마음을 넓게 하고 그 바탕이 이성에 있으니 지혜로워서 이 층계로 인하여 그대는 하늘의 사랑까지 오를 수 있느니라.” 오늘날 흔히 부부간의 사랑을 성욕의 한 형태로 동등시 하고 있는데 청교도들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밀턴(Milton)은 라파엘 천사를 통해 이 사실을 매우 주의깊게 진술한다:

“라파엘 천사는 새롭게 창조된 아담이 하와를 사랑하는 불가항력적인 첫 번째의 경험을 자세히 알고자 할 때 그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그러나 만일 인류 번식의 근원인 접촉감이 다른 어떤 것보다 월등하고 강렬한 기쁨으로 생각된다면, 그것이 가축에도 짐승에게도 허용되었음을 생각하라. 그 향락 중에 인간의 영혼을 빼앗고 정욕을 동하게 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들에게 한결같이 부여되지 않았으리라. 그녀와의 교제에서 그대가 찾는 더 고상하고 매력있고, 인간적이고, 이치에 맞는 것을 항상 사랑하라.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정욕은 안된다. 참된 사랑은 거기 있지 아니하다”(밀톤의 “실낙원”). 부부간의 성관계가 전부이거나 중시인 것은 아니지만, 부부간의 사랑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하고 중요한 표현이다. 그것이 없다면 부부간의 사랑은 불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현대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애정을 표현한다는 점에 있어 부부 어느 편도 자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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