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들의 예배 (14)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10)하나님의 가장 신실한 일꾼들은 공예배를 더 선호한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았던 자들이나 하나님과 가장 잘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던 자들은 공예배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다. 그들에게 사적인 예배와 공예배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공예배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경우를 보라. 그의 행동이나 증언이 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단호하게 확증하는 한 가지 사실을 보라.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시84:1). 이는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없는 감탄을 반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라고 고백한다.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사모함이 그에게 있었다. 주의 장막에서 주님을 만나는 사모함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그의 영혼을 쇠약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는 성전에서 영혼의 만족함을 얻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10절). 다윗이 왕이지만 공예배에서 이탈되어 있는 것보다 차라리 하나님의 집에서 문지기가 되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즐기는 편을 택하겠다는 고백이다.

성도들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모든 기회들과 주님께서 공적으로 경배를 받으시는 기회들을 어떻게 간주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은 수많은 고통과 위험과 죽음에 직면하면서 살았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다가 수많은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안전과 자유보다 공예배를 더 소중히 여겼다. 만일 그들이 주님을 개인적으로 섬기는 것으로만 만족했다면,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안전하고도 평안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주님도 모든 제사의식들이 자신으로 인해 중단될 것을 아시면서도 그 의식들을 소중히 여기고 참여하셨다. 비록 그 모든 의식들이 다 죽은 형식들이었을지라도 주님은 공적으로 참여하는데 빠지지 않으셨다. 도리어 주님은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의 자리에 앉아서 그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라고 권면하셨다. 주님께서 그들보다 훨씬 더 나은 선생이신데도 주님은 종종 회당에 가시고 유월절에는 항상 성전에 가신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기록은 공적 예배시간을 향한 주님의 열정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시69:9) 라는 시편기자의 고백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1)공예배는 가장 큰 자비함을 얻는 최고의 시간으로 가장 큰 심판을 피하는 자리이다

온 교회가 국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예배이다. 사회의 왜곡된 현실들, 재난에 대하여 주님의 자비하심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공예배이다. 공예배는 주님께서 그런 목적을 이루고자 제정해주신 은혜의 수단이다. 주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성공을 약속하시면서 공예배를 바르게 사용하라고 말씀하신다.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욜2:14-16). 여기에는 이어지는 18절과 19절에 언급된 성공의 비결이요 수단이 제시되어 있다. 주님은 온 나라에 필요한 자비하심을 베풀겠다고 약속하신다.

신약에 교회가 공적으로 모여 기도할 때, 베드로가 감옥에서 구출 받는 기적이 일어났다(행12:5-17). 여기에서도 공적인 모임이 교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31). 요한계시록 8장 4절은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고 말씀한다. 성전에서 제사하면서 공적인 기도를 드린 후에 일어난 현상을 언급하고 있다. 당시 로마제국에서 심판과 핍박을 받는 이들을 위한 성도들의 기도는 즉시 응답되었다. 이처럼 공예배는 공개적이고도 보편적인 주님의 은총을 받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성도는 사적인 예배보다 공예배를 더 선호해야 한다.

12)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공예배에 가장 효력 있는 가치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죽지 않으셨다면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모두 개별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며 별도로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없었다면 그 모든 일을 다 자연의 빛에 따라 거행해야 했을 것이다. 공적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언약의 성례들을 집전하는 것은 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된 것들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것들이다. 우리의 눈앞에 제시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에 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정복자는 승리의 날에 백성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준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6-8절에서 그리스도를 승리하신 왕으로 묘사하면서, 하늘에 오르실 때 땅에 남아있는 교회를 위하여 선물들을 주셨다고 했다. 11절에서는 그 선물들이 바로 교회 성도들을 돌보는 책임을 지닌 직분자들이라는 것을 밝힌다. 이로서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공적인 예전 의식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으므로 우리는 공예배를 무엇보다 선호해야 한다.

13)하나님의 약속들이 공예배 시간에 더 많이 나타난다

주님은 백성들이 모여 있는 곳에 임재 하신다.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20;24).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주님은 여기서 교회에게 말씀하신다. 공적 예전이 집행될 때 문을 열심히 두드리신다. 은혜와 영광과 모든 선하고 좋은 것들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주님께서 주의 백성들, 주님을 공경하기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자들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아끼지 않고 주실 것이다. 공예배 못지않게 개인적인 경건 시간에 힘쓰는 자에게도 큰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공예배와 비교할 수 없다.

주님과 개인적인 시간을 잘 가지는 자는 공적 예배에서 더 큰 은혜를 받는다. 한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하여 유익을 얻는다면,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과 함께 할 때는 더 큰 유익을 얻을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주님과 함께함으로서 얻는 유익은 공적인 모임에서 온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에 더욱 극대화됨으로 공예배를 사적 예배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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