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들의 예배 (13)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5)공예배에 더 많은 영적 유익이 있다 개인적인 경건 시간을 통해 얻는 유익이 무엇이든 바른 공예배 시간에 얻는 유익이 훨씬 더 크다. 공예배 시간에는 영적 생명과 영적인 빛을 더 많이 받는다. 또한 영적인 힘과 성숙함, 영적인 위로와 신선함도 더 많이 받는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신랑이신 그리스도에게 어디서 위로와 영혼의 영양분을 받으며, 어디서 필요한 양식과 쉼을 얻을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리스도는 당연히 신부에게 공예배라고 답하실 것이다.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찌니라”(아1:7,8). 여기 목자들은 주님께서 공예배를 집전하도록 세우신 목사들과 교사들을 가리킨다. 교회는 그들에게서 먹을 양식과 쉼이 무엇인지를 지도받는다. 그들을 통해 영적인 위로와 양식을 얻는다. 목사들은 대목자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양 떼들을 목양하시듯이 양무리들을 돌보아야 할 직무를 맡은 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목적을 낳게 하는 근원적인 장소가 바로 교회이다. 에베소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교회에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이 바로 이 일을 하는 것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는 공적인 예전을 집전하게 하시기 위함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에 그것을 선물로 주셨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절). 교회를 세우는 일, 심지어 온전하게 하는 일을 위함이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13절). 이 말씀에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지식과 연합이 있다. 그래서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처럼 인간의 모든 궤술과 간사한 유혹을 이기는 힘과 견고함이 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5절). 여기에 모든 일에 관한 성장과 풍성한 열매가 있다. 이것들이 주님께서 교회에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이다. 우리가 그 수단들을 제대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그 목적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다윗은 개인 경건 시간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성소에 들어갈 때가지 그를 집요하게 짓누르고 있는 시험 거리들과 싸워야 했다. “내가 어찌하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73:16,17)고 했다.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뵈올 때까지는 그 무엇으로도 이런 의혹들을 사라지게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사적인 예배시간보다 공예배 시간에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 유익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적인 예배보다 공예배를 더욱 선호해야 한다.

6)공예배는 사적 예배보다 성도들을 더 세워준다 개인적인 시간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유익을 얻는다. 그러나 공예배 시간에는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준다. 선함이 가장 잘 퍼지고 가장 잘 소통된다. 모범은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모범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슥8:20,21) 이런 일은 다윗에게 자주 있었던 일이었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시34:3).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찌어다 여호와께 돌릴찌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시96:7,8).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모일 때 다른 성도들과 함께하면 서로를 깨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공예배 시간에 함께 모이는 것을 포기하면 죽은 모습, 냉랭함, 뜨뜻미지근함이 하나님의 백성을 사로잡고 만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더욱 세우는 공예배를 사적 예배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7)타락을 방비하는데 공예배가 사적 예배보다 더 나은 안전한 방식이다

공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는 자들은 배교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다윗은 망명생활을 할 때 사적인 예배시간을 누구보다 더 많이 가졌다. 그러나 그는 공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우상숭배의 위험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것이 사무엘상 26장 19절에 나타나있다.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날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붙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사울은 다윗에게 다른 신을 섬기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러데 왜 다윗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기업을 받는 가장 좋은 길은 공예배에 참여하는 것인데, 공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쫓아내었기 때문에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우상숭배의 죄에 빠트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예배는 배교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비해주는 안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공예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저주스러운 배교의 길로 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복음 진리와 성결한 삶으로부터 벗어나 방탕한 말과 행동을 일삼는 자들 중에는 무엇보다 공예배에 빠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자들이 많다. 믿음이 파선되고 선한 양심을 버린 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공예배를 내팽개치는 자들이다. 공적 모임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그런 현상은 공예배야말로 배교의 길로 나아가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길임을 가르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는 사람들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이러 저리 밀려 요동하지 않아야 한다(엡4;14). 공예배를 거부하는 자들이 신속하게 이탈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제정해주신 수단이며, 교회로 하여금 악한 자들과 동행하거나 외식하거나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서 주신 것이다.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양식을 취해야 한다(아1:8). 그렇지 않으면 늑대와 여우들의 밥이 되고, 우리를 기만하여 넘어뜨리려는 자들의 손에 떨어질 뿐이다. 공예배는 우리를 배교의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8)공예배 시간에 주님은 가장 강력하게 일하신다 주님은 개인적인 경건시간보다 공예배 시간에 더 크게 역사하신다. 지구상에 일어난 가장 놀라운 일은 공예배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다. 공예배가 매주 자주 있고 주어지는 영적인 은총들이 잦다 보니 흔하게 여겨질 수는 있지만 공예배 시간에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은총은 사적인 예배시간에 주시는 것보다 더 크고 놀라운 것이다.

우리가 회개나 중생 같은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공예배 시간을 통해 주님은 마른 뼈들을 살아나게 하시며 무덤에 묻힌 자들을 일으키시고, 수년 동안 썩어 냄새가 나는 자들까지도 새 사람이 되게 하는 일들을 얼마든지 하신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리는 주님께서 세우신 목사들을 통해 복음을 들을 때 일어나는 기적들이다. 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자들이 보게 되는 일이 공예배 시간에 나타난다. 복음선포가 죄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오게 한다. 공예배 시간에 주님은 병든 영혼들을 말씀으로 치료하신다. 사람이나 천사의 도움으로 되지 않는 일들을 주님은 하신다. 주님은 자신의 말씀을 보내 병든 영혼들을 고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하심으로서 고치시는 것이다. 말씀이 우리를 온전하게 만든다. 공예배 시간을 통해 주님은 마귀를 물리치시고,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는 죄인들의 모든 더러운 영혼들을 깨끗하게 하신다. 공예배 시간에 주님은 정사와 권세자들을 쫓아내시며 어둠의 힘들을 물리치시고, 사단을 하늘로부터 번개가 덜어지듯 떨어지게 하신다(엡6:12; 눅10:18). 공예배 시간에 주님은 죄인들의 영혼 속에서 자연의 모든 과정을 뒤바꾸신다. 옛것이 지나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다. 물론 주님의 능력이 공예배 시간에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예배는 사적인 예배시간보다 주님이 그런 일을 더 크게 일으키시는 일반적인 수단이다. 그러므로 공예배를 사적인 예배도 더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9)공예배의 모임은 하나님 나라와 가장 가까운 처소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개인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개인적으로 은밀한 시간을 갖지 않으며 영광스럽고 찬란한 예배가 하나같이 공적으로 이루어진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사들, 하늘나라의 예루살렘 모여 있는 모든 믿음의 선진들, 장자들의 총회가 다 하나의 교회를 형성한다(히12:22, 23).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찬양하고 어린양을 노래한다. 그 모든 광경이 다 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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