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2) 공적인 예배에 주님의 임재하심이 더 많이 나타난다 공예배에서 주님은 특별한 방식으로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더욱 친밀하게 자기 백성들에게 나타나신다.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20;24). 공예배의 지침을 말씀하신 후에 주님은 이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공적으로 경배되는 곳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곳에서 “내가 강림하겠다. 빈손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의 행복을 말씀하심으로 공예배의 효과를 암시하고 있다. 주님이 지속적인 임재하심으로 함께하신다는 약속은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에 나타난다. 주님의 친밀하신 임재하심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묀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라는 주님 자신의 말씀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주님께서 그들 가까이 있거나 함께 있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들 중에 있겠다고 말씀하심으로 가장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셨다. 바로 여기에 공예배의 친밀감이 있다.
요한계시록 1장 13절도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라고 말씀한다. 주님께서 교회 가운데 걸으시고 함께 거하심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또한 고린도후서 6장 16절은 레위기 26장 2절을 지칭하는 말씀인데, 주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세우신 그 장막에서 그들 가운데 행하시라는 주님의 약속을 말한다. 그러므로 공예배에 참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떠나신다는 말씀이다. 마치 법궤가 이스라엘을 떠났을 때 영광이 떠났다고 외친 것과 같다.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인 공예배 의식이 바로 그 징조이다. 하나님은 공예배 의식을 사용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예배에 함께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임재하심은 사적 예배보다 공예배 시간에 더 많이 드러나며, 더 많이 즐거워하게 된다. 우리가 공예배를 더 즐거워하지 않으면 주님을 진노하게 만들고 주님께 불쾌감을 주며, 주님께 일종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과도 같다. 주님은 성도 개개인에게 함께 하시어 은혜의 시냇물이 흐르게 하시지만, 성도 개개인이 함께 모여 공예배에 참여할 때, 거기에 모든 은혜의 약속들이 다 집결한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경배할 때, 그 은혜가 연결되고 연합되고 하나가 되어 마치 큰 강을 이루는 것과도 같다. 이사야 25장 6절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라고 표현하신다. 공예배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더욱 풍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적 예배보다 공예배를 더 선호해야 한다.
3) 공예배에 가장 명백한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뵈올 수 있다 하나님은 공예배에서 자신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신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 다른 나라에게는 주지 아니한 평강과 사랑과 생명의 환상을 주셨다. 우리가 그분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날이 이르기까지 우리는 공예배 처소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영광과 능력을 볼 것이다(고전13:12).
다윗은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하나님의 많은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공예배 의식 가운데서 더 많은 것을 기대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발견하는 것 이상의 것을 공예배 시간에 알게 되기를 사모했다. 그는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27:4)라고 고백하고 있다. 다윗이 그렇게 말한 것은 공예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기를 더 사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메마르고 물이 없는 광야와 같은 곳에 있으면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63:1-2)라고 표현했다. 4)공예배에서 성도들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모습을 영적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성도들과 교회에 함께 거하실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시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것이 공예배에 드러나실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임을 늘 기억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요한계시록 1장 13-16절 말씀을 보면 그분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셨는데(13절), 그것은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본 것이다. 모든 성도의 위로와 즐거움의 샘이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상징하고 있다. 가슴에는 금띠를 띠셨는데(13절) 이것은 정복자 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백성들의 모든 원수를 이기신 승리자로 묘사되고 있는 말씀이다. 또 그분의 머리와 흰 털은 그분의 영원성을 나타낸다. “그의 눈은 불꽃같고”(14절)라는 표현은 그분의 전지하심을 나타나는데 그분의 눈에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한다. 불꽃은 어둠을 흩어버리고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관통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같고”(15절)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상징한다.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백성의 행복을 대적하는 자들을 무너뜨리는 능력을 말한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15절)라는 표현은 가장 강력하고도 큰 그분의 음성을 나타낸다. 그것은 듣지 못하는 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소리이며, 죽은 자들도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음성이다.
“그 오른 손에 일곱별이 있고”(16절)라는 표현은 그분의 사자들과 복음의 사역자들, 공예배를 집전하는 자들을 돌보시는 주님의 섭리와 보살핌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오른손에 붙들고 계시므로 이 세상의 모든 폭력과 어둠의 세력들이 주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한다.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16절)라는 말씀은 공적으로 선포되는 그분의 말씀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더 예리하다는 것을 상징한다(히4:12,13). 심령을 관통하고 영과 관절과 골수를 질러 쪼개기까지 하는 능력의 말씀이다. 모든 반대에도 그리스도는 계속 전진하실 것이며 정복하고 또 승리하실 것이다.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과 같더라”(16절)라는 말씀은 빛과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의 얼굴이 드러난다. 아름다움과 영광의 광채가 나타난다. 그분을 바라보는 모든 성도들의 눈에 사랑스러운 존재로, 기쁨의 존재로, 사모하는 이와 행복의 근원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처럼 명백한 현현하심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의 위로하심과 능력과 지혜의 효과적인 출현하심과 사랑과 아름다움과 영광의 모든 광채가 바로 공예배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공예배를 통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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