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들의 예배 (11)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 제일교회)

4)시편 찬송(찬송)

공예배에서는 시편 찬송이나 찬송을 불러야 한다. 스코틀랜드장로교회나 칼빈의 예배에서는 시편 찬송을 불렀다. 예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성도가 그 말씀에 대하여 합당한 반응을 보이는데 주목해야 한다. 말씀 읽기나 설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행하시는 것이며, 기도와 찬송은 그 말씀에 대한 성도들의 반응이다. 예배는 그것을 인도하는 설교자와 회중 간의 만남이 아니라, 예배는 하나님과 그 분의 백성들의 만남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원하시는 합당한 반응은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께 나아가 간구하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을 찬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그의 시편 찬송가 서문(Preface to the Genevan Psalter, 1543)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성령께서 만드시고 다윗이 노래한 시편보다 좋은 노래가 없으며, 이보다 더 찬송의 목적에 부합하는 노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시편을 노래할 때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 입에 친히 이 시편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노래하게 하시는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개혁신앙에 선 사람들은 시편 찬송을 회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구약의 시편은 여전히 성도들의 공예배나 사적인 모임에서 불러야 할 찬송이라고 할 수 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 말씀하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라는 표현은 시편의 다른 표현이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세 가지 유형의 노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개혁교회의 성경적인 찬송은 가사가 성경적이며 개혁신학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무턱대고 부르다가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예배자끼리 흥겨워하는 음악 공연처럼 된다면 진정한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찬송가 곡조와 내용 모두가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곡조와 가사인지를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 찬송은 흥얼거리는 노래가 되어서는 안되고 가사를 음미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할 것이다.

6. 공적인 예배

1)사적인 예배와의 구분

가)구약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문에서 예배하라고 말씀하신다(신13:5-7,11). 이것은 시온 산성에 성전이 세워졌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특별한 장소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온의 문들을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더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론 시온에서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아니다. 야곱의 모든 거처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했다. 여호수아도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고 했다. 여기서 편의상 시온에서의 예배를 공예배라고 한다면, 야곱의 집에서의 예배를 사적인 예배 혹은 가정 예배라고 부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에서 공적으로 하는 예배를 집에서 사적으로 하는 예배보다 더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경건생활을 사랑하시지만, 시온에서 하나님을 공적으로 예배하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그러므로 이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교회의 공적 예배가 사적 예배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과거 구약시대의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복음의 시대에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물론 율법 시대에는 공적인 예배 처소가 거룩한 땅이었다. 그러나 복음 시대에는 예배 처소가 어디든 그 장소를 특별히 구별된 거룩한 장소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예배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장소 문제는 사소한 것이다. 어떤 장소가 예배하기에 적합한지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 성전은 제사를 드리는 처소였지만 복음 시대에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구약 시대에 성전은 은혜의 수단이요 예배의 수단이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수많은 신비한 모습으로 자기 백성들과 교통하셨고 그리스도께서 현현하셨으며, 직임자들을 세우시고 복을 주셨다. 그러나 복음 시대에는 그런 장소가 없다.

나)구약과 신약 시대의 장소적인 차이는 분명하다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모든 그림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다 사라졌다. 이제는 더 이상 그림자가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세 사람이 어느 특정한 장소에 모일 때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단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말씀하셨다. 초대 교회 교부 오리겐(Origen)은 “나는 이 땅에서 거룩한 장소를 찾지 않고 내 마음에서 찾겠다”라고 했다. 우리도 건물보다 더 성결한 장소를 우리의 마음에 두어야 한다. 구약에서의 공예배와 신약에서의 공예배 사이에는 장소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공예배가 사적인 가정 예배보다 선호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할 근거는 아니다. 예배 처소의 차이가 있지만 구약에서는 제사 드릴 성결한 장소를 강조했을 뿐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 모두 공예배가 사적 예배보다 더 선호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다)공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공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공동으로 사용할 예전 의식(Ordinances)이 있어야 한다. 예전 의식이란, 기도와 찬양, 말씀 읽기와 선포 및 성례 거행을 말한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하고, 기도도 또한 개인적으로도 은밀하게 해야 하지만, 동시에 공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예전이다. 공적인 성경읽기와 기도가 정당하게 행해져야 한다. 둘째는 회중이 있어야 하는데, 회중이란 예전 의식들을 수행할 성도들을 말한다. 한 두 사람이 드리는 예배를 공예배라고 하지 않는다. 한 가정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공적으로 모이는 지역 교회의 합동 예배를 공예배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반드시 직분자가 있어야 한다. 직분자란 예전 의식을 집전할 합법적인 자로서 주님께서 세우시고 교회가 청빙한 자이다.

7. 공예배의 유익

1)하나님은 사적인 예배보다 공예배에서 더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께서 영화로우신 분임을 우리가 인식할 때, 하나님은 더욱 영광을 받으신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식할수록 주님께서 더 많은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 다윗의 승리를 몇몇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을 때 그의 영예가 더욱 커졌다(삼상18:7). 시편 기자도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때 그 사실에 혼자서 만족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라”고 촉구한다(시96:1-3).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선포할 때 주님은 더 많은 영광을 받으신다. 시편 22편 22-25절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길을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예배가 무시되고 경멸될 때, 자신의 백성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지 못하는 것처럼 책망하신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1:6). 여기에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와 의식을 말한다(말1:7, 8, 11).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멸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모든 신자들이 모인 곳에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실 때 그리스도께서 가장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살후1:10). 이렇게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주님을 높이고 예배드릴 때 주님께서 더 영광을 받으심으로 우리는 사적인 예배보다 공적인 예배를 더 중시하는 것이다.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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