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들의 설교에 대한 안목(하-1)

설교는 성경 강해, 본문이 품은 것 언급하고, 회중 양심에 적용돼야

이러한 모습은 퍼킨스가 가톨릭교회와는 선을 그으면서도 영국 국교회 소속 목사의 한 사람임을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퍼킨스에게 있어 천사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돕기 위해 보냄을 받았음이 분명”한데, “이것은 모든 목사에게 커다란 위로와 가치가 있는 교리”로서, 천사들이 신실하고 경건한 목사들을 더 많이 섬기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목사들에게 주된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천사들이 가장 기뻐하는 영혼 구원이 목사의 사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목사들은 천사들의 존재와 사역을 기뻐할 수 있지만 결코 섬기거나 숭배하지는 않는 것이 당연하다.

목사는 하나님에 대한 백성의 해석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간구를 표현하고 그들의 필요를 알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도우시도록 간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목사는 백성의 죄를 의식하고, 공적으로 그리고 사적으로 하나님께 그것을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설교자를 기꺼이 도우신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도 기쁘고 은혜로운 일이며 설교자를 견고하게 세우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6. 에임스의 설교이해

1) 강해설교의 유익

에임스는 설교라는 것은 성경의 강해임을 보여준다. 회중들이 설교를 듣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 요구되는 두 가지는, 성경본문이 품고 있는 바를 언급해야 하고, 처한 상황에 따라 회중의 양심을 향하여 그 말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한다. 본문이 가지고 있는 진리, 곧 교리를 설명해 주고, 이로부터 선함, 곧 적용을 제시해야 한다. 교리는 직접적인 결과로서 성경본문으로부터 일차로 발견되어야 하고, 그런 후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교리를 향한 명쾌한 말씀에 대해서는 더 이상 토론이나 언급이 불필요하며 허용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회중이 질문할 경우, 이를 증명하기 위해 교리의 토의는 증명의 형식을 요구하며, 이미 그러한 과정을 거친 경우라면 예증의 형식을 가져오면 된다. 여기서 잊지 않아야 할 점은 회중의 유익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청교도 설교자가 피해야 할 것

설교 중 설교자가 피해야 할 점은, 회중에 대하여 너무 강압적인 태도를 갖는다거나, 듣는 회중을 배려하지 않고 성경본문 그 자체를 망각한 채 너무 많은 것을 다 말하려고 하는 과욕이며, 또는 주어진 성경본문을 무시한 채 그 본문과 상관없이 설교하는 행위이다. 그렇게 된다면 회중들은 설교자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혼동하고, 어떻게 그 말씀을 적용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 회중은 일목요연하게 설교의 요지를 기억하기가 어렵고, 가정에 돌아가서 개인적으로 말씀을 다시 떠올리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러한 설교를 통한 삶의 열매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설교자가 오직 성경 진리를 발견하고 설명하는 데만 정신을 쏟아 회중의 경건과 축복이 있는 적용과 실천을 간과하는 것은 죄이다.” 설교자는 본문에서 나오는 모든 교리들을 다 말할 필요가 없고, 필요와 상황에 따라 성도의 유익을 위해 그 가운데서 선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너무 많은 것을 다른 본문에서 무분별하게 빌려올 경우 따라가지 못한 성도들의 실망이 커져 믿음에서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3) 설교의 활용

말씀의 활용(use)은 둘로 나누이는데, 판단(judgment)과 실천(practice)이다.

판단은 정보(information)와 마음의 개혁(reformation of mind)을 제공한다. 정보는 진리를 증명하며, 개혁은 어떤 잘못을 반박한다. 그렇지만 이미 정죄된 이단을 직접적으로 논박하기보다는 분명하게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생활의 실천에 있어 요구되는 지시는 교훈(in¬struction)과 교정(correction)으로 구성되는데, 교훈은 마땅히 따라야 할 바를 제시하고, 교정은 마땅히 피해야 할 바를 정죄한다. 설교는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은 것으로 살아 있고 능력 있는 말씀으로 눌린 자에게 위로를, 좌절 가운데 있는 자에게 권면을, 잘못된 행위를 교정하기 위한 경고를 주며 실천적 적용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특히 기억해야 할 점은 이 모든 열매들이 인간의 지혜나 그 어떤 육적 감정을 움직여서가 아니라 순전히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마땅히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신앙을 세우기 위해 선포되는 설교는 성령의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이다. 그러기에 에임스는 설교에는 인간의 증거들이 결코 첨가되어서는 안되며,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라틴어, 헬라어 또는 히브리어 단어나 문장을 마땅히 사용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에임스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들의 말과 혼합될 때,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성, 완전성 그리고 엄위성이 훼손될 것을 염려한다. 인간의 화려한 말에 현혹되어 복음의 단순성을 싫어하게 되기 때문이다.

에임스는 형식적으로는 말하는 것, 수사학적 서두로 시작하는 것 등 그럴 듯한 웅변을 불필요한 것으로 멀리한다. 설교자가 본론에서 벗어나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는 것을 세 가지 이유로 경계한다.

첫째, 인간적인 정신의 맛을 보이고,

둘째, 시간이 소요되며,

셋째, 보다 신령한 일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4) 설교 언어와 동작

에임스는 설교이해를 이론에서만 끝나지 않고 목회관점에서 실질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설교자의 언어와 동작은 진심에서 우러나는바 완전히 영적이어야 한다. 설교자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삶으로 실천하고 중심이 말씀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하며, 거룩한 권위와 함께 열심, 사랑, 온유, 자유 그리고 겸손을 드러나는 자이어야 한다.

설교자의 발음은 자연스러우며 친절하고 명확하고 회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뚜렷해야 하는데, 그럴 때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 듣기에 불쾌한 두 종류의 목소리가 있는데, 하나는 무겁고 느리며 노래하는 듯 졸리는 듯 하는 목소리로 잘 연결이 되지 않아 이해가 어려운 말투의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설교에 가장 부적절한 목소리로 말이 너무 빨라 서두르며 즉흥적이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강압적일 때 주제를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일반 법정, 광장 연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언어, 발음, 그리고 제스처 등은 설교에는 부적절하기에 피해야 한다. 에임스에게 있어 성령의 능력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설교는 우아하고 번지르르한 수사보다는 아주 단순한 말에서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설교에 있어 가식(affectation)의 양만큼 효과와 권위는 상실된다. 설교를 위해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가져야 할 것은 그 어떤 것도 버려서는 안 된다. 설교 전후의 기도는 설교에 도움을 준다. 설교 전 기도의 내용으로는 말씀의 목적, 효용, 우리의 간구, 우리의 무가치함, 우리의 의무와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이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회중들이 같은 청교도주의의 마음으로 설교를 들으며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구하며 신실하게 그 뜻을 순종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설교 후 기도는 감사가 마땅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며 설교의 주제를 기억하며 간구로 전환시키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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