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들의 설교에 대한 안목(상)

들어가는 말

한 시대와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바로 잡는 개혁의 방법은 기존 질서의 왜곡됨을 인정하거나 과격하게 고치는 것을 지양하고 점진적으로 개선하려고 하는 방법이다. 종교개혁 시대 독일의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와 취리히의 개혁자 울드리히 쯔빙글리(Huldreich Zwinglii), 그리고 제네바의 개혁자 요한 칼빈(John Calvin)은 이런 방법을 채택하였다.

이런 흐름을 따라 청교도들은 무지와 미신으로 가득한 영국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과격한 혁명가의 방법이 아니라,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던 개혁자들의 전통을 따라 영국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칼에 의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보다는 설교 운동을 통해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영적인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 운동으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들이 살아나며 교회들이 무지와 미신으로부터 개혁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므로 청교도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청교도의 설교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글을 전개하면서 오덕교 교수의 “청교도의 설교 이해”와 주도홍 교수의 “청교도주의의 설교이해”, 그리고 서창원 교수의 “청교도 신학과 신앙”, 그리고 로이드 존스의 “청교도 운동과 계승자들”을 많이 참조하고 발췌 인용하였다.

1. 청교도의 설교 이해

설교 없는 청교도 운동이나 청교도 없는 설교 역사를 생각할 수 없기에 청교도의 설교 이해는 청교도 이해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청교도들은 설교를 거듭남의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청교도의 진수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설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복음의 사역에 속하는 가장 위대하고 탁월한 역사”이며, “사람들을 은혜의 상태로 부르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청교도 존 코튼(John Cotton)도 설교는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는 ‘생명의 샘이신 그리스도’(Christ, the Fountain of Life)라는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로 전파되거나 읽혀지는 것, 들려지거나 사경회를 통해서 증거 되는 것,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강력한 힘”이라고 증거하였다.

성경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권위라는 청교도 조나단 미첼(Jonathan Mitchel)도 ‘믿음이 어디서 오는가?’라고 물은 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그것을 적용함으로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말씀을 증거하고 저주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을 은혜의 상태로 부르는 것이 설교자의 설교라는 것으로 정확히 이해하였다.

2. 청교도 설교가 퍼킨스와 에임스

설교학에 대해 정립한 청교도의 설교의 대가 두 명을 선택한다면 윌리엄 퍼킨스(W. Perkins, 1558-1602)와 윌리엄 에임스(W. Ames, 1576-1633)이다. 이들은 영국의 대표적 청교도들이며, 종교개혁시대의 끝자락에 해당되는 16세기 중후반 영국 국교회와 17세기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배경으로 제시되는 이 두 사람의 설교이해는 당시의 상황과 신학을 그대로 담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이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선생과 제자 그리고 동역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종교개혁의 역동적인 역사적 전개와 긴밀한 상관성이 있다. 두 사람은 18년의 나이차가 있었으며 격동의 시대를 살아갔으며, 이 두 사람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종교개혁 신학, 특히 설교론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교회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설교운동으로 평가되는 청교도주의의 설교이해에 있어서 이 두 사람의 설교이해는 현대 우리의 설교강단에도 도전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설교에 대한 안목을 이해하는 것이 청교도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이 될 수 있다.

퍼킨스는 16세기 영국 국교회를 종교개혁 정신에 근거하여 바르게 일깨웠으며, ‘퍼킨스의 가장 거대한 제자’ 에임스는 대륙으로 건너가 새로운 토양 네덜란드 개혁교회에 그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발휘하며 청교도주의를 이식한 공로자이다. 교회사에서는 퍼킨스를 ‘청교도주의의 아버지’로, 에임스를 최초의 개혁교회 윤리신학자로 일컫기도 한다.

3. 퍼킨스의 설교와 설교자 이해

퍼킨스의 설교이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단지 개혁정통주의 서클의 인물들에만 영향을 받은 설교이해라기보다 교회사 전반에 있어 도움이 되는 인물들로부터 파생되었는데, 그는 바로 요한 칼빈이라고 할 수 있다. 퍼킨스는 특이하게 설교를 ‘예언’(prophecying)이라고 부르고 있다.

1) 설교의 대언(Prophecying)자로서 힘써야 할 부분

영국 국교회 소속 목사인 퍼킨스에 의하면 설교자의 대언(prophecy)에는 둘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 말씀의 선포로서의 설교와 백성을 대신한 기도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목소리로 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선포하는 것이고, 기도는 사람의 목소리로 아뢰는 것이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과 일치성 가운데 설교해야 한다. 설교준비는 설교내용 준비와 설교전달 준비로 나누어진다. 설교준비는 말씀의 부지런한 개인연구가 요구된다.

2) 설교자가 마땅히 힘써야 할 부분

이를 위해 설교자가 마땅히 힘써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첫째, 교리와 더불어 성경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둘째, 성경을 문법적, 수사적 논리적 분석을 하고, 다른 도움도 받으며 이해해야 한다. 셋째, 초대교회로부터 인정된 정통신학에 입각한 글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넷째, 성경을 연구할 때 떠오르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생각들을 기록하여 사용해야 한다. 다섯째, 우리의 눈을 열어 성경을 밝히 이해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다.

물론 철학자나 고대 교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사람의 증언들 위에 우리의 믿음을 세워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도 교리와 더불어 성경본문을 이해해야 한다는 퍼킨스의 입장에서 16세기 종교개혁시대의 긴박한 현장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퍼킨스는 율법과 복음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적용을 둘로 나누는데, 복음적 적용과 율법적 적용이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지만, 죄의 질병을 치료하지는 못하며, 복음은 성령의 능력으로 구체적인 삶을 가르치며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다.

3) 말씀과 사람의 해석자

퍼킨스는 설교자는 성령의 조명을 받는 철저한 성경 연구를 한 후, 학자의 혀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설교자의 거룩한 삶이 요구되는데, 화목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서 설교자 자신이 구체적으로 화목한 삶을 이룩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그는 “어찌 더러운 입술로 마음에 거룩함도 없이 성화를 설교할 수 있겠는가?”라고 도전한다. 퍼킨스는 당시 어려운 영적 상황을 직시하며 삶이 없는 설교자들을 질타한다. “오늘날 회심자가 적은 이유는 자기 자신과도 화목하지 않은 채, 하나님께 다른 사람들을 화목시키고자 하는 목사들을 하나님이 싫어하시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퍼킨스는 목사는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자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해석자가 되어야 하고 사람의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참된 해석자의 직무”를 감당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younsu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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