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훈련

변명혜 박사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지난주에 옷장 옷걸이대 한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떨어진 옷걸이대를 살펴보니 합판에 작은 스테이플이 잔뜩 박혀 있었다. 그렇게 허술하게 붙여 놓았으니 약할 수밖에 싶었다. 덕분에 안 입는 옷들을 정리할 기회가 되기는 하겠지만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생각이 많았다. 여유가 있으면 이 참에 새롭게 옷장을 주문해서 들여놓으면 깔끔하기는 하겠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일단 라이센스가 있는 핸디 맨은 아니지만 한 번씩 소소한 고칠 것을 손 봐주는 아저씨에게 연락을 했다. 그 분은 베트남에서 열여섯 살에 동생과 함께 배를 타고 미국으로 온 보트 피풀이다. 미국으로 올 때 배에 탄 옛날 사진을 나에게 보여 주었는데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배를 탄 사람들의 사진이 감동이었다. 그야말로 입은 옷 한 벌만 지닌 채 미국에 도착했지만 성실하게 일해서 나름대로 자리를 잘 잡은 분이다. 처음에 우리 집에 와서 잔 일을 하고는 너무 적게 수리비를 달라고 해서 고맙고 안스러운 마음에 조금 더 드렸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99센트 스토어도 갖고 있고 큰 집에 살고 있어서 나보다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구나 하고 속으로 웃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신앙 얘기를 꺼내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저씨가 몇 년 전에 딸이 우울증 증세가 있다는 얘기와 아내와의 관계가 어렵다는 말을 했었다.

오랜만에 만난 것이어서 딸은 좀 나아졌는지 물었더니 본인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털어놓았다. 자기는 큰 부자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먹고 살만하고 건강도 좋고 다 갖추었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 아내와의 갈등 때문이다. 미국으로 온 후 고등학교에서 만난 아내였다. 아내의 강한 성격과 사회성의 결여로 자녀들도, 자신도 힘들고 어떻게 하든지 가정을 지켜보려고 인내하고 살지만, 너무 불행하다는 하소연이다. 

독불장군 같은 아내의 강함 때문에 입을 열면 다툼이 시작되어서 본인은 입을 닫고 살기로 했다고 한다. 밥도 따로 먹고, 방도 따로 쓰고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사는 것이다. 옷장을 고치러 왔다가 답답한 마음을 한참 털어놓고는 잠시 뚝딱뚝딱 못질을 하더니 옷걸이를 다시 잘 붙여 놓았다. 알아서 달라는 수리비를 지불한 후 그냥 보내려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함께 기도를 하자고 했다. 기도 후에 눈을 뜨니 기도를 안 한 것인지 셀폰을 가지고 사진을 찾고 있었다. 결혼사진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았다. 마냥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의 결혼사진 아래 부분에는 “하나님 안에서”라고 써 있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도 결혼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 하나님이 등장한 것이었을까? 그렇게 사랑에 가득 찼던 표정의 두 사람이 이제는 찬바람 부는 가정생활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변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에 아내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할 때 아내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아내라 할지라도 아내의 장점만을 바라보며 사랑을 표현하라는 내 말은 별 도움이 안되는 뜬구름 잡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사이가 무너져 내린 우리집 옷걸이대처럼 튼튼하지 않은 합판 같은 관계라면 이제라도 재료를 보강해서 고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부부관계를 포함해서 나와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관계에서 먼저 나 자신을 알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을 바탕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훈련을 지속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에는 MBTI 라는 성격유형 검사가 유행이고 젊은이들은 자기를 소개할 때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어떤 유형의 성격을 지닌 사람인지를 많이 언급한다. 물론 한 사람이 지닌 다양한 성격을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규정 짓는다는 것은 무리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파악한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이민 가정과 교회 안에서 겪는 관계의 어려움과 아픔은 결국 하나님께서 직접 보이신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신 성육신의 모델, 겸손에 기초한 관계 훈련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lpyun@apu.edu

08.1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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