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이제 한 달 후면 학교를 그만 둔다. 은퇴의 시기로 들어서니 생소한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은근한 스트레스가 된다. 메디케어 플랜 A, B 이외의 보험을 정하는 것, 소셜 시큐리티 연금 신청, 401k를 고정된 수입으로 만드는 것 등이 모두 새롭다. 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서 에이전트들도 만나고 세미나도 참석하느라 바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떻게 매달 기초 생활비를 확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더 이상 수입이 없을 것을 예상하는 시점이 되니까 노후대책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노후대책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겠지만 아마도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노후의 경제생활에 대한 대책일 것이다. 노후대책은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66살 이상인 한국노인의 40퍼센트가 빈곤 상태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한국의 노인 빈곤 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그동안 주위 분들이 노후대책에 대한 질문을 하면 나는 별 생각 없이 “애들이 노후대책이예요”라고 대답을 했었다. 물론 농담 삼아 한 말이지만 막상 은퇴가 코앞에 다가오니까 마이너스 될 부분을 메꾸려면 아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모든 부모들이 수고하며 자녀를 키웠지만 그렇다고 노후에 자녀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의존을 하고 싶지는 않다. 엄마 속도 모르는 딸아이는 왜 돈 걱정을 안 하던 엄마가 요즘에 돈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엄마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듯이 말한다. 이번 주말에는 세 아이가 모여서 경제적으로 엄마를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의논을 한다고 하는데 고마운 마음과 찜찜한 마음이 반반이다.
그동안 나는 크게 돈 걱정을 안 하고 살았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는 절대 아니고 계산상으로는 도무지 손익이 안 맞는 상황에서도 그럭저럭 잘 살아온 삼십 여년의 경험 때문이다. 보험료, 공과금, 식품비 등 한 달에 필요한 생활비와 수입을 대조하다 보면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도 다른 사람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수긍하고 감사하면서도 숫자로 계산되어 나오는 은퇴 후 예상 수입 앞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집을 담보로 역모기지를 할까? 생명보험을 해약하고 조금이나마 쌓인 현금을 찾아서 쓸까?” 복잡한 생각 앞에서 나는 조용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내 마음 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살펴보다가 대학시절 겁 없이 불렀던 찬양이 떠오른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정말 나에게 주 예수님보다 귀한 것은 없는 것인지, 이 세상의 부귀, 명예, 행복과 주님을 바꿀 수 없는 것인지를 질문한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들킨 후에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리기로 한다.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방해하는 걱정과 염려를 그 분의 발 앞에 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코앞에 다가와 있는 물질에 대한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기로 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께 온전한 신뢰를 드리기로 한다. 마음을 지키는 일에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 듯하다. 처음 전도사로 교회 사역을 시작했던 때 받은 정말 쥐꼬리 같던 연봉, 그리고 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해마다 조금씩 올라간 연봉이 연도 별로 쭉 적혀 있는 소셜 시큐리티에서 온 편지는 마치 내 인생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록한 것 같다. 그 기록을 보면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은퇴 시기가 마침 소셜 시큐리티에서 나오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도 감사하다. 이십 사 년 동안 전임교수 생활을 했지만 한국학교에서의 십 년은 아무 은퇴연금 혜택이 없었는데 그나마 십 사년의 미국학교 교수직에서 꼬박 꼬박 떼어 냈던 401k 덕분에 은퇴 후 어느 정도 수입이 들어올 수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일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고 거듭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능력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시편 40편 5절 말씀처럼 하나님 그 분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행하신 수많은 놀라운 일들을 기억할 때 우리는 노후대책을 포함한 다가 올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lpyun@apu.edu
07.13.2024